(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미 기자 = 지난달 발생한 은행권 위기의 패닉 단계는 끝났을 수 있지만 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미국시간) 보도했다.

은행권 위기로 대출이 얼마나 감소해 경제에 어느 정도의 충격을 줄지가 미지수라고 매체는 지적했다. 앞으로 수개월 안에 해답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주 발표된 지역은행 실적을 보면 당국이 이례적으로 미보증 예금을 암묵적으로 지원하는 신속한 대응에 나서면서 심각한 예금 인출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주가가 가장 크게 떨어진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 샌프란시스코(NYS:FRC)는 24일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은행의 실적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혼란의 최악의 상황이 끝났는지 가늠할 수 있어 투자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중소형 은행서 꾸준한 자금이탈 가능성…MMF 등으로 유출

그러나 이제 문제는 머니마켓 뮤추얼 펀드 등으로 자금을 옮기면 더 많은 이자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은행의 장기 고객들이 중소형 은행이나 지역은행에서 느린 속도로 꾸준하게 예금을 인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차입비용이 커지면 이익도 압박받게 된다.

골드만삭스가 추정한 것에 따르면 은행의 수익성이 10% 감소할 때마다 대출은 2%씩 줄어든다. 예금 베타(beta)로 불리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변동이 은행 예금 금리에 전가되는 비중이 만약 2007년 수준으로 오른다면 미국내 대출은 3~6%가량 줄어들 수 있다.

만약 이렇게 되면 올해 성장률은 0.3~0.5%P가량 줄어들 것으로 골드만삭스는 추정했다.

골드만삭스는 예금 베타가 이전 사이클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연준이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리면서 금리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고객들이 더 많은 이자를 주는 대안 투자처에 눈뜨고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 뱅킹 덕분에 예금을 옮기는 데 따른 비용도 낮아져 경쟁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예금금리는 통상 연준이 금리 인상을 중단하고 2~3개 분기 이후에 고점을 찍는다. 연말까지 예금금리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다.

미 은행권 예금 추이
[출처:월스트리트저널]



◇ 커지는 증자 압박…주가 하락 시기에는 증자 매력 떨어져

예금이 인출되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진 은행은 증자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나 주가 하락기에 증자의 매력은 떨어지고, 이미 은행들의 시가총액이 많이 감소한 상황에서 증자의 어려움도 커질 수 있다고 저널은 지적했다.

TS롬바르드의 스티븐 블리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다수 소형은행의 예대율이 80% 가까운 수준이지만 대형은행은 60%라고 지적했다. 더 많은 예금을 가진 대형은행들은 예금 인출 우려가 적고, 만약 대차대조표를 축소해야 할 때 대출을 줄이기보다 증권 보유분을 축소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수많은 소형은행에는 대출을 줄이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

에버코어ISI가 주최한 행사에서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를 지낸 로버트 카플란은 "전국적으로 보면 은행들은 예대율을 동결하거나 이것을 줄일 의지가 매우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많은 중소형 은행이 전화를 받고 정중하게 '연말에는 당신에게 더는 대출해줄 수 없을 거 같아요. 아니면 대출을 리프라이싱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카플란은 더 많은 은행 최고경영자가 충분한 손실 대비에 나서지 않은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나 상업 및 기업 대출에 대해 앞으로 손실에 처할 수 있다고 깨달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이 대출 디폴트(채무불이행)로 인한 손실을 우려하게 될 때 예금자들의 불안은 다시 부상할 수 있다고 저널은 경고했다.

카플란은 현재의 은행위기는 "2번째나 3번째 이닝에 해당하며, 7번째 이닝은 아니다"라면서 연준이 은행 위기의 후유증을 더 잘 파악할 때까지 금리 인상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 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연말에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면 피해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카플란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이 오고 있을지 두렵다"고 말했다.

◇ 은행권 대출 위축 중소기업·소도시에 영향

대출이 위축되면 소기업이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규모가 큰 기업들은 주로 자본시장에서 차입하며 지난 한 달 동안 이들의 신용 비용이나 신용 가용성은 거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100명 미만 직원의 회사 가운데 거의 70%는 자산규모 2천500억달러 미만의 은행에서 상업대출이나 기업대출을 받는다. 30%는 100억달러 미만 자산 규모의 은행에서 대출받는다고 골드만삭스는 집계했다.

또한 대도시 이외의 지역에서 그 연결고리는 더 세진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대부분 카운티에서 중소은행은 소기업 대출의 90%를 차지한다.

지금의 상황이 지난 2008년 금융위기와는 거의 닮은 점이 없다. 당시에는 비우량 모기지를 묶어 증권화했으나 이 증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모기지채권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위험한 피드백 고리가 이어지면서 은행들은 대출을 중단하게 됐으며 이는 더 많은 차압과 모기지 채권 가격 하락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3월에 발생한 은행위기는 은행들이 보유한 국채 미실현 손실 때문에 나타났다.

결국 2008년 금융위기보다 1980년대에 나타난 저축대부조합위기와 더 닮은 꼴이라고 저널은 지적했다. 당시에는 수백개의 대출기관이 파산했다. 수년간 문제가 곪아왔지만, 미국 경제는 1990년까지 침체를 피했다.

sm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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