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미 기자 =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부실이 과거 위기 때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미국시간) 보도했다.


시장 사이클이 하강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일하고, 거주하고, 쇼핑하는 방식에 장기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급등하면서 부동산 가치는 떨어졌고, 원격 근무와 전자상거래가 부상하면서 오피스와 점포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두 가지 요인이 이렇게 심각한 수준으로 한꺼번에 찾아온 것은 1970년대 이후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당시에는 경기침체와 함께 유가 급등과 주가 붕괴가 나타났으며 신기술 발전으로 일자리가 대도시에서 빠져나갔다.

◇ 팬데믹으로 美 상업용 부동산 시장 '대격변'

미국의 오피스 공실률은 지난 1분기 12.9%까지 오르며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높은 수준이다. 코스타그룹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집계를 시작한 이래 공실률이 가장 높았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얼마나 깊어질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일부에서는 지난 1990년대 초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보다는 덜 심각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미국 경제가 심각한 침체를 피하고 금리가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크게 나빠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피스 시장과 일부 점포 임대주가 직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과거처럼 침체가 끝나고 빌딩의 가치가 신고점을 찍었던 것과 같은 상황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경기 회복기에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성장률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빌딩 가치가 하락하면 부동산 세수에 의존하는 시 정부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은행의 대차대조표에도 영향을 줘 경제 전반에 대한 대출이 줄어들 수 있다.

상업용 부동산의 최대 대출 기관이자 소유주인 은행과 연기금, 자산운용사에도 나쁜 소식이며 이는 향후 몇 년간 이들이 손실에 직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상업용 부동산 관련 손실 늘어날 듯…급격한 반등도 어려워

KBW 리서치에 따르면 상업용 모기지는 미국 은행권 대출 보유분의 약 3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레킨은 북미 연기금이 자산의 평균 9%가량을 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집계했다.

뉴욕 소재 자산운용사이자 부동산 투자사인 아레나 인베스터스의 댄 즈원 최고경영자(CEO)는 "말 그대로 수조달러의 투자분이 갑작스럽게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고 말했다.

과거 부동산 침체기는 경기 둔화 시기와 일치했으며 이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리를 인하해 차입 비용을 낮췄고, 경기를 부양했다. 1993년 말부터 2022년 중반까지 미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은 약 4배 가까이 높아졌다. 인플레이션을 훨씬 웃도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기술과 생활 및 업무 방식의 변화가 많은 임대주를 위협하고 있다고 부동산 투자회사 펀드라이즈의 벤 밀러 CEO가 지적했다. 이미 점포 소유주들은 전자상거래의 활성화로 몇 년간 고전해왔다.

UBS 그룹에 따르면 점포 폐쇄는 올해 급격하게 늘었다. 앞으로 5년간 약 5만개의 소매 점포가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23일 파산보호 신청을 한 베드배스앤비욘드(BB&B)는 360곳의 점포와 120개의 바이바이베이비 점포를 폐쇄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오피스 시장도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다. 코스타에 따르면 오피스 근로자 한 명당 점유하는 사무 공간의 규모는 2015년보다 12%나 감소했다.

부동산 분석업체인 그린 스트릿에 따르면 오피스 빌딩 가격은 2022년 초 이후 25% 감소했다. 쇼핑몰의 가격은 같은 기간 19% 떨어졌고, 2016년 이후 44%나 낮아졌다.

일례로 트렙에 따르면 플로리다 북동부 교외지역의 대규모 복합 오피스 단지인 디어우드파크의 메러디언 빌딩의 경우 유일한 임차인이었던 도이체방크가 작년 말 이사를 나갔다.

부채 비용이 급증하고 미국 전역의 빌딩 가치가 하락하는 가운데 해당 부동산 소유주는 새로운 대출을 구하지 못해 모기지가 만료되는 지난 1일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sm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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