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7년 전 국회서 "앞으로 활동 안 하겠다" 선언
과거 전경련과 미래 한경협 간 '차이'가 복귀 관건

(서울=연합인포맥스) 유수진 기자 = "개인적으로 저는 앞으로 전경련 활동 안 하겠습니다."
2016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 국정조사' 청문회 현장.
증인으로 출석한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쏟아지는 의원들의 질타에 "전경련 해체에 대해 뭐라 얘기할 순 없다"면서도 이같이 약속했다. 회비 납부를 중단하라는 지적에도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재계 1위' 삼성이 경제단체 '맏형' 격인 전경련과 선을 긋기 시작한 순간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1961년 일본 게이단렌(경단련)을 본떠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은 한국경제인협회에 대해 손자가 사실상 탈퇴를 선언했다.

당시 이 회장의 발언이 개인으로서의 활동 중단인지, 삼성 계열사 전체의 탈퇴를 의미하는 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삼성 계열사 모두가 전경련을 탈퇴했고, 자연히 이 회장의 활동도 없었다.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답변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로부터 7년 뒤 삼성 옆에 다시 '전경련'이란 키워드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심지어 '복귀'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16일 임시회의를 개최하고 전경련 재가입 여부를 논의했다. 준법위는 삼성이 윤리경영 의지를 드러내며 2020년 초 출범한 독립기구로, 주요 안건을 논의·결정해 권고하는 역할을 한다.

이날 준법위는 2시간여의 회의에도 최종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오는 18일 다시 만나 추가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삼성에 있어 전경련 복귀가 얼마나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슈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임시회의 참석 전 인터뷰하는 이찬희 위원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부회장이 활동 중단을 선언한 2016년 말은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고리'로 지목돼 주요 기업 총수들이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불려 갔던 때다. 전경련 해체에 대한 여론이 들끓으며 결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삼성뿐 아니라 현대차와 SK, LG 등 4대 그룹이 일제히 탈퇴원을 제출했다. 주요 회원사를 잃은 전경련은 운영비가 30% 미만 수준으로 쪼그라들며 존폐 기로에 섰다.

4대 그룹의 탈퇴는 전경련에 재정적 어려움만 안긴 게 아니다. 상징적 의미도 상당했다. '전경련=정경유착의 온상'이란 낙인이 찍히며 과거의 위상을 잃어버렸다. 재계 이슈에서 매번 배제되기 일쑤였다.

전경련이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 체제에서 혁신을 공언한 뒤 4대 그룹의 재가입을 우선적 목표로 삼은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이들이 다시 합류하는 건 낙인이 지워졌다는 의미로 볼 수 있고, 그래야만 다시 예전 지위를 되찾을 수 있어서다. 물론 4대 그룹이 납입하는 회비도 재부흥을 위해 꼭 필요하다.

사실 삼성 등의 전경련 복귀는 시기의 문제일 뿐 예정된 수순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전경련이 주도하는 재계 행사가 크게 늘었고, 실제 참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3월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코쿠부 후미야 마루베니 회장과 인사하는 윤석열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회장은 지난 3월 전경련과 일본 게이단렌이 일본 도쿄에서 개최한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했다. 해석하기에 따라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던 과거의 발언을 뒤집었다고 볼 수 있는 행보다.

이 자리엔 나머지 4대 그룹 회장들도 함께였다. 아무도 전경련 회원사가 아니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총수 자격으로 참석했다. 윤 대통령이 자리하는 국가적 행사 성격이 강했기에 가능했다.

4대 그룹 총수들은 4월 전경련 주최로 미국에서 열린 한미 경제인 행사에도 참석했다. 당시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 동행할 경제사절단 참가기업을 모집한 곳이 바로 전경련이다. 이렇게 차츰 거리가 좁혀졌다. 그리고 한국경제인협회로서의 새 출발을 앞두고 재가입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삼성을 비롯한 4대 그룹으로선 전경련 복귀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워딩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룹 총수가 직간접적으로 전경련의 문제점을 인정했고 실제 탈퇴로 이어진 전례가 있어서다. '재계 1위'로 이슈 발생 시 가장 먼저 나서는 삼성은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준법위를 거쳐 가입 여부를 결정해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한 데다 과거의 전경련과 미래의 한경협이 다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일부 조건을 붙여 재가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특히 재계에서는 한경협이 과거 4대 그룹 탈퇴 등으로 진통을 겪은 만큼 조직 쇄신에 더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한다. 전경련 내부에서도 과거로의 회귀를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4대 그룹의 합류가 양측의 '윈윈'으로 이어질 거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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