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


(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태 기자 = 식물을 키워본 사람은 안다. 식물은 물 없이 살 수 없다. 하지만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는다. 지나친 수분이 뿌리의 호흡을 막는다. 보이지 않는 흙 속의 뿌리가 썩으면 잎도 노랗게 시들어간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그제야 깨닫는다.

시장은 유동성 없이 살 수 없다. 유동성이 마르는 건 공포 그 자체다. 중앙은행은 위기 때 유동성 공급으로 대응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020년, 팬데믹에 맞서 제로금리(0%)와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QE)를 재가동했다. 연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오랫동안 대규모 돈 풀기를 유지했다.

한국은행도 한동안 과거보다 낮은 정책금리 수준을 이어갔다. 연합인포맥스 정책금리(화면번호 8844)에 따르면, 한은 정책금리는 2008년 8월 5.25% 수준에서 2020년 5월 0.5% 수준까지 내려갔다. 정책금리는 2021년 8월부터나 올랐다.

이른바 이지머니(Easy Money)의 시대였다. 유동성 과잉은 유동성 경색과 달리 두렵지 않았다. 시장이 뿌리부터 썩을 수 있다고 경고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올해 헤드라인에 걸린 각종 금융사고가 뒤늦게나마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렸다.

증시에선 라덕연 사태·영풍제지 사태가 벌어졌고, 증권업계에선 투자은행(IB) 직원들의 수십억 원대 부당이득과 한 프라이빗뱅커(PB)의 수백억 원대 횡령이 드러났다. 은행권에선 지방은행 간부가 수년간 1천400억 원가량을 횡령해 충격을 안겼다.

이달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와 관련해 "오랜 기간 유동성 과잉이 지속된 상황에서 흐트러진 윤리의식이나 이익 추구 극대화 현상이 표출됐다고 판단한다"고 진단했다.

이 원장은 지난 10년간 돈이 세상에 풀린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점검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돈이 흔했던 만큼 부패도 흔했을 것이란 우려로 해석된다.

일단은 이지머니의 시대가 끝난 듯하다. 연준은 고금리 장기화를 시사하고 있고, 글로벌 지표 금리인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2007년 이후 처음으로 5%선까지 올랐다. 탈세계화·탈탄소화라는 구조적인 변화 속에서 과거와 같은 저금리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유동성 감소가 부패 감소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당국의 세밀한 감독·관리는 언제나 필요하다. 식물 기르기와 마찬가지다.

감독당국의 역량을 높이는 방안 중 하나는 인력 충원이다. 수많은 의혹과 사고 속에서 당국이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꾀하기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홍콩 소재 외국계 금융기관의 불법 공매도 적발과 관련된 정치인 질의에 "비슷한 것을 다시 적발한다는 장담을 할 수는 없고, 최대한 노력하며 효율적으로 인력을 운용할 수 있도록 살피겠다"고 이 원장은 답했다. 그는 "동굴에 비친 그림자를 따라갔던 작업"이라는 말로 조사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금융사고를 막고자 한다면 금감원에 대한 국정감사만이 아니라 인력 운용의 어려움을 덜어줄 지원책도 논의해야 한다. 부패를 막으려면 더 많은 손이 필요하다.

yts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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