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

 


(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태 기자 = "작년보다야 낫겠지만 올해도 만만치 않을 거 같다"

 

이달 연합인포맥스가 송고한 '증권사 CFO가 말한다' 시리즈에서 증권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올 한 해도 험준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보수적인 기조와 리스크 관리를 강조하면서다.

 

분위기가 가라앉은 곳은 증권가만이 아니다. 서점가의 경우 쇼펜하우어의 비관론에 빠졌다.

교보문고 2월 셋째 주 인문 베스트셀러 1위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다. 쇼펜하우어 철학을 담은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4위)'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5위)'도 잘 팔린다.

"모든 인생은 고통이다"라고 말한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고집스러운 비관주의자였다. 노년에 빛을 보기 전까지 울퉁불퉁한 삶을 살았던 그는 만사가 불통(不通)하거나 악화할 것으로 봤다.

일각에선 노력과 보상의 괴리에 혼란스러운 한국 사회가 부조리를 직시하고 수용하라는 쇼펜하우어으로부터 배움을 얻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쇼펜하우어의 투자방식도 그의 철학처럼 교훈적이다.

독일 무역항 단치히에서 태어난 쇼펜하우어의 가문은 대대로 부유한 사업가 집안이었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단치히를 방문했을 때 쇼펜하우어 가문의 저택에서 묶을 정도였다.

부잣집 도련님 쇼펜하우어는 열일곱 살 때 불행을 알게 됐다.

독일·프랑스·영국을 넘나들며 가업을 잇던 아버지가 상품 창고 창문에서 추락해 익사하면서다. 무역상·선주(船主)였던 아버지 하인리히 쇼펜하우어는 회사 지분을 유산으로 남겼고, 쇼펜하우어는 스물한 살 성년이 된 후 유산 중 3분의 1을 상속받았다. 상인의 길을 걷길 바랐던 아버지의 바람에도 학자를 꿈꿨던 쇼펜하우어는 회사 주식을 처분한 뒤 1만9천 탈러를 보유한 자산가가 됐다.

쇼펜하우어가 고른 투자처는 안전자산인 국채였다.

안정적인 이자소득을 통해 학문에 매진하려는 심산이었다. 데이비드 카트라이트 위스콘신대학교 철학 교수는 쇼펜하우어 전기에서 그가 연이자로만 대학교수 급여의 두 배 이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적었다.

돈을 벌고자 연구·강의를 하는 학자들과 달리 경제적 자유를 얻은 쇼펜하우어는 당대 주류였던 합리적 이성론에 반기를 들었다. 비합리적 의지(욕망)를 강조한 그는 인도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삶은 욕망의 연속이며 고통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탐욕과 고통을 연결 짓는 비관론은 절제와 리스크 관리로 이어졌다.

쇼펜하우어는 "돈은 마시면 마실수록 목마른 바닷물 같다"는 금욕주의자였다. 고수익을 약속한 단치히 금융회사에 유산 중 자신의 몫을 투자했다가 무일푼으로 전락했던 낙천적인 어머니 요한나와 대비적이다. "재앙은 인간의 삶을 이루는 참된 요소이므로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문장은 쇼펜하우어의 리스크 관리 성향을 들려준다.

그러면서도 쇼펜하우어는 투자 기회를 꾸준히 모색했다. 학문할 자유를 준 돈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멕시코 채권이나 생명보험회사에도 투자했던 그는 "취득하거나 상속받은 재산을 보전하는 데 나의 펜을 사용해도 펜이 무가치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썼다.

16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독일 철학자는 올해 어떻게 투자할까.

해외 부동산 시장이 불안한 상황이다. 일본과 스위스에서는 상업용 부동산 손실로 금융기관 수장이 사임하기까지 했다. 우리 금융투자업계는 해외 상업용 부동산뿐만 아니라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까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이러한 와중에 선제적으로 대규모 충당금을 쌓은 한국투자증권·하나증권 CFO 등의 보수적 조처는 현명하고도 모범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NH투자증권 CFO는 부실채권에서 기회를 엿보기도 한다. "예상하고 대비하면 재난이 닥쳤을 때 견디기 힘들지 않다"는 쇼펜하우어가 떠오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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