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신경영 선언으로 삼성그룹은 세계적인 기업이 됐지만, 이건희 회장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지어놓은 밥을 다 먹기 전에 새 밥을 지어야 한다는 위기감에 이 회장은 최근 들어 사실상 '제2의 신경영'을 외치고 있다.

◇ "아직 끝나지 않았다"…끊임없는 '채찍질' = 지난 2010년 3월, 삼성특검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이 회장은 2년여 만에 복귀하며 "지금이 진짜 위기다. 삼성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갈피를 못 잡는 임직원들에게 강하게 경고를 날린 것이다.

그 후 이 회장은 2011년 4월 21일부터 서초사옥으로 일주일에 두 번가량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승지원에 주로 머물며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은둔의 제왕'(The Hermit King)으로 불렸던 그가 공개석상에 나타나 그룹 현안을 직접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출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삼성테크윈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되자 이 회장은 "삼성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다"고 강하게 질타하며 그룹 전체로 강도 높은 경영진단을 확대했다. 이를 통해 비위가 적발되거나 실적이 악화된 계열사에 대해서는 CEO급을 망라하고 전례 없이 문책성 수시인사가 단행됐다.

또, 작년 초 가전박람회 참관차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찾은 이 회장은 삼성 제품을 둘러본 후 "정말 앞으로 몇 년, 십 년 사이에 정신을 안 차리고 있으면 금방 뒤지겠다 하는 느낌이 들어서 더 긴장된다"고 말했다. 당시 박람회에 참여한 업체 중 삼성이 가장 돋보이는 기술력을 과시했지만, 이 회장은 만족하지 않은 것이다.

이 회장은 작년 말 자신의 취임 25주년 기념식에서도 "우리의 갈 길은 아직 멀다"며 추가 혁신을 독려했다.

또, 삼성전자가 작년 불황 속에서도 사상 최대실적을 내며 승승장구했지만, 이 회장은 과거에 만족하지 않고 앞날을 걱정했다.

그는 올 초 신년사에서 "삼성의 앞길도 순탄치 않으며 험난하고 버거운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며 "이제는 지난 성공은 잊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4월, 3개월간의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도 "(신경영) 20년 됐다고 안심해서는 안 되고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 '휴대전화 쏠림·성장동력 미흡' 우려 = 이처럼 이 회장이 끊임없이 채찍을 드는 이면에는 '위기의식'이 깔려있다. 지금까지는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앞날을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그룹의 매출(380조원) 중 삼성전자의 매출은 201조원으로 53%를 차지했다. 또, 삼성전자 매출 중 53.9%는 휴대전화사업이 주를 이루는 IM(IT·모바일)사업부의 매출(108조5천억원)이다.

게다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중 IM사업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0년 26.1%에 불과했지만, 2011년 51.9%, 작년에는 66.9%로 급증했다.

자칫 휴대전화 사업이 부진해지면 삼성그룹의 전체 실적이 크게 흔들릴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특히 IT 산업은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만큼, 작은 변화라도 제때 따라가지 못하면 한순간에 흔들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은 지난 2010년부터 태양전지와 전기자동차용 2차전지, LED, 바이오, 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2차전지와 의료기기에서는 일부 성과를 낸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 다른 사업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휴대전화 사업이 워낙 잘 되면서 삼성 전체가 잘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은 실적 쏠림을 극복할 수 있는 신성장 동력을 찾는 데 고민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 사회적 책임, 경영권 승계도 '과제' = 이 회장은 최근 들어 부쩍 '사회적 책임'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 신년사에서 "사회로부터 믿음을 얻고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 삼성은 국민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회 발전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신년사에서도 "사회 각계와 더 자주 소통하고 협력해 사랑받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이 회장이 직접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이 부분에서는 아직 사회적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삼성은 최근 들어서도 계열사들의 담합 행위와 삼성전자의 불산누출 사고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이 회장에게 남은 또 다른 과제는 바로 후계 구도를 잘 정리하는 일이다. 아직 이 회장이 건재하지만, 경영권 승계 준비를 한없이 미룰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각자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며 후계자 수업을 착실히 받고 있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개인별로 역량을 더 쌓아야 하는데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잡음과 절차적 문제들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은 작년 초 '자녀들의 역할을 언제쯤 늘릴 것이냐'는 질문에 "아직 때가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yu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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