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받은 것은 단순한 금전적 부채를 넘어 사회적 부채를 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지난 6월 그룹 직원들에게 보낸 사내 메시지에서 사회적 책임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국책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한 대규모 자금을 조속히 갚을 수 있도록 팔 수 있는 모든 자산을 매각해 3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자구계획안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두산그룹은 알짜 자회사와 사업부를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팔기 위해 속도전에 나섰고, 총수 일가는 고통분담에 동참한다면서 사재를 출연했다.

박 회장 등 총수 일가는 보유하고 있던 5천700억원 규모의 두산퓨얼셀 지분 23%를 유동성 어려움을 겪는 두산중공업의 자본확충에 보태기 위해 무상증여했다. 책임 경영을 실현하려는 차원이었다.

무엇보다 '캐시카우'인 핵심 계열사들을 과감하게 팔았다.

반도체에 들어가는 동박을 생산하는 알짜 계열사 두산솔루스를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에 6천986억원에 매각했고, 유압기기와 방산 사업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모트롤BG 사업부도 소시어스-웰투시 컨소시엄에 4천530억원에 팔았다.

벤처캐피탈(VC) 자회사 네오플럭스 지분 96.77%를 신한금융지주에 730억원에 매각했고, 중구 두산타워를 마스턴투자운용에 8천억원에 팔았다.

골프장 클럽모우CC도 1천850억원에 매각해 2조원이 넘는 자금을 일사천리로 조달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평가들도 나왔다.

결국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과 함께 그룹의 핵심 축을 이루는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도 시장에 내놨다.

국내 건설기계 시장에서 1위 기업인 두산인프라코어를 매물로 내놓자 시장에서는 의구심이 컸다.

진짜로 팔까하는 의심도 받았다.

하지만 두산그룹은 향후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소송 비용까지 모두 감내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결국 현대중공업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두산그룹은 시장과 약속한 3조원 유동성 확보 목표를 올해 안에 채우게 됐다.

사실 상당 규모의 자산을 이처럼 빠른 속도로 매각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박정원 회장 등 총수 일가는 그룹의 존망이 걸린 문제를 속도감 있게 해결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결단에 결단을 거듭했다.

두산그룹은 지금까지 수없는 위기를 겪었지만, 올해는 지배구조의 핵심인 두산중공업이 흔들리면서 구조조정 성공 여부에 따라 그룹의 운명이 좌지우지될 수 있었다.

지난 1995년 OB맥주를 팔면서 사업구조를 바꾼 것처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팔 수 있는 모든 자산은 다 매각했다.

현금흐름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결단을 더 이상 늦춘다면 위기가 그룹 전체로 전이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일단 두산그룹은 당장의 급한 불은 껐다.

그럼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영업 불확실성이 여전하고, 신사업 추진을 바탕으로 한 그룹의 사업 안정화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을 신재생에너지와 가스 터빈, 수소·연료전지 사업, 소형 원전 등을 중심으로 한 친환경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룹의 사업구조를 바꾼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친환경 사업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3조원의 유동성을 확보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신사업을 본궤도에 끌어 올리고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정도의 신용도를 확보하려면 지금까지 해 온 자구 노력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시장과의 약속을 지킨 두산그룹이 친환경 기업으로 전환하는 데도 성공해 턴어라운드를 달성하는 모습을 보여줄 날이 빨리 올 수 있을 지 주목해 본다. (기업금융부 홍경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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