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국고채 주요 구간 금리 상승 폭이 장중 20bp를 넘나들고 10년 국채선물 가격이 투빅(=200틱) 가까이 폭락한 지난 28일 패닉에 빠진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온종일 한국은행 등 당국의 입만 바라봤다.

고대하던 당국의 안정화 조치는 끝내 감감무소식이었고 일부 참가자들은 시장을 떠나겠다거나 시장에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는 등 성토가 줄을 이었다. 일부의 과도한 푸념일 수도 있겠으나 패닉 상황에서 채권시장 참가자들이 기댈 곳이라고는 사실상 한은밖에 없었던 탓에 나오는 얘기들이다.

최근 약세장은 해외금리 상승 영향이 주효했지만 그간 확대 재정정책으로 적체된 물량이 궁극적인 문제로 꼽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일 때 찍어 놓은 단기구간 채권들은 곧 줄줄이 만기도 돌아온다.

결국 시장 안정화를 위해선 기발행된 물량을 흡수하는 것이 관건인데, 기획재정부는 4월 결산을 마쳐야 국고채 바이백(매입)을 실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은의 시황 판단과 결단이 시장 제일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번 역대급 약세장은 국고채 주요 구간 금리를 지난 2014년 이후 약 8년 만에 가장 높은 위치에 올려놨다.

8년 전으로 되돌아가 보면 2014년은 이 총재가 임기를 시작한 첫해이기도 하다. 이 총재가 취임한 직후인 2014년 4월 18일 한은은 7천억 원어치 국고채 단순매입에 나섰다.

이어 같은 해 8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 한은은 매달 7천억 원씩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했다. 4월 16일 당시 2.890%였던 국고채 3년물 금리는 같은 해 12월 1일 기준 2.073%까지 하향 안정화했다.

2014년 9월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선 이 총재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 특이요인에 따른 금리 상승이 나타날 경우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시사한 방식은 공개시장조작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퇴임을 목전에 둔 이 총재는 시장에 대한 관심과 초심을 완전히 잃어버린 듯하다.

이 총재가 전일 주요 은행장들과의 만찬 장소로 이동하던 길목에서 기자가 시장금리 급등 속 안정화 조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을 물었지만 이 총재는 응하지 않았다. 이 총재는 왜 그런 질문을 곧 떠날 사람에게 하느냐는 뉘앙스의 혼잣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이 총재의 퇴임 시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후임 총재의 청문회 일정 등을 고려하면 며칠 뒤 한은은 리더십 공백 사태가 불가피하다.

총재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은 안팎에선 한은이 구두개입에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시장 변동성에 대응하기 조심스러울 것이란 추측이 제기됐는데, 틀리지 않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한은의 소극적인 태도는 지난 2월 11일 국고채 단순매입 발표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시장에 불필요한 기대감만 키우고 막상 개입이 필요한 시점에선 침묵한다는 지적이다.

당시 한은은 국고채 단순매입 계획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뒷받침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각에서 제기되자 반박자료까지 배포했었다. 시장금리 변동성이 일시적으로 커지는 상황에서만 조치에 나설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안정화가 필요할 때도 적극적인 조치가 부재하다 보니 각종 억측이 나오고, 한은은 이 같은 상황을 스스로 자초했다는 비난을 정면으로 맞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시장에 개입하지 않은 데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해외금리 상승에 비해 국내 금리가 상대적으로 덜 오른 만큼 개입할 적기가 아니었다는 논리다. 한은은 해외 시장 대비 국내 시장이 생각보다 잘 버텨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장 참가자들은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자포자기한 분위기라고 토로한다. 실제로 분주해야 할 국고채 입찰일 아침에도 최근엔 물건 거래가 뜸한 모습이다. 참가자들이 헤지를 할 의욕도, 입찰 물량을 받을 의욕도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일은 국내 금리가 해외금리 대비 더 급등했음에도 아무 조치가 없었는데, 이처럼 가늠하기 어려운 한은 태도에 시장의 불신만 강화되고 있다.

한은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들이는 것도 아니다. 과거 시장 참가자들이 한은에 전화를 걸어 시황에 대한 생각을 직접 묻던 풍경도 이젠 사라졌다.

시장금리 상승, 특히 단기금리 상승은 변동 대출금리를 연쇄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가계부채를 우려하는 한은이 대출금리와 무관하지 않은 시장금리 상승을 방관한다는 것은 모순적으로 들린다.

이 총재는 지난 23일 '출입기자단과의 송별간담회'에서 계획과 관련한 질문을 받자 "놓치는 일 없이 마무리를 깨끗이 하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밝혔다. '마무리'의 의미가 시장 방관이 아닌 시장 안정에 대한 관심을 뜻한 발언이었기를 바란다. 퇴임까지 며칠이 남았든 끝까지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깔끔한 마무리가 아닐까 싶다.

(금융시장부 이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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