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미 기자 = 위험하게 살기를 좋아했던 스위스 거대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가 결국 길을 잃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미국시간) 보도했다.
 

 


저널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다른 은행보다 훨씬 상황이 양호해 '승자'로 평가받던 CS가 결국은 '위험한 베팅을 좋아하는' 과거의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167년 역사의 막을 내리고 몰락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기 때 스위스 금융시스템의 문제아였던 UBS가 CS의 인수자로 나선 것을 보면 지난 15년 동안 상황이 급반전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UBS는 당시 정부로부터 53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고 파산을 모면했으며, 이와 달리 CS는 정부의 지원을 거절하고 카타르 국부펀드가 주도하는 민간투자자로부터 90억달러를 조달했다.

◇ 금융위기 이후 금융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CS

CS는 금융위기 이후에도 자유분방한 투자은행에 의존했으며 더 안정적인 사업에 집중하는 것에는 꾸물거렸다. 또한 위험 선호 성향도 버리지 못했다.

본토벨의 은행 애널리스트인 앤드레아스 벤디티는 "그들은 '우리는 금융위기의 승자이며 모두가 다쳤다'고 느꼈다"면서 "이 때문에 그들은 전반적으로 이런 종류의 사업과 투자은행 익스포저를 더 강화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는 15년에 걸친 추문과 소송, 전략적 우왕좌왕으로 이어졌다. 같은 기간 다른 대형은행들은 더 집중했고, 더 규제를 강화했으며 극적인 사건들에서는 멀어졌다.

그러나 CS는 스파이 스캔들, 단일 고객으로부터 55억달러 손실, 경영진 교체, 세금 및 제재 회피와 관련된 벌금, 모잠비크 대출 판매로 인한 사기 혐의 합의 등에 휘말렸고, 이는 은행의 재무상황을 약화시키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악화시켰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면서 은행시스템에서 발생한 작은 진동만으로도 CS는 다시 글로벌 금융시장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스위스중앙은행이 긴급 자금 투입도 해법이 되지 못했다.

CS는 19세기에 처음으로 스위스 철도 개발을 위한 자금을 조달했으며, 20세기에는 유명한 월가 프랜차이즈 CS 퍼스트보스턴 세계적 은행으로 발돋움했다. 21세기에는 억만장자를 위한 은행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노력했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은행시스템은 훨씬 보수적으로 움직였다. 대형 은행들은 비난받았지만, 구제금융으로으로 자본을 확충했으며 주변부 사업을 정리하고 그들이 잘하는 것에 집중했다.

UBS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재앙에 가까운 수준에 베팅하면서 거의 파산을 몰고 왔던 투자은행을 축소했다. 2011년에는 사기 트레이딩 추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결국 전 세계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자산관리 사업에 관심을 돌렸다.

CS는 그러나 사업이나 기업 문화 측면에서 UBS와 같은 수준의 개편에 나서지 않았다고 전직 임원들은 지적했다.

◇ 위험한 투자만 지속…투자은행 성과는 계속 악화

브래디 두건 최고경영자(CEO) 재직 당시 CS는 계속 차입금융과 증권화, 하이일드 채권과 같은 사업에 돈을 쏟아부었다. 투자은행을 축소하기는 했지만, 단편적인 행위에 그쳤다.

CS가 즐겨하던 사업 접근법은 결국 취약성으로 노출됐다. 신용경색의 재발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는 다수의 위험한 투자활동을 불리하게 만들었으며 손실에 대비해 CS와 같은 은행들이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하게 했다.

이 때문에 CS는 미국의 거대 은행 골드만삭스나 JP모건 등과 인수합병 등에서 경쟁하기 점점 어려워졌다. 이들 은행은 위기 이후 대차대조표를 강화했으며 미국 자본시장에 접근성이 우월했기 때문이다.

CS가 집중했던 투자은행은 수익률 측면에서 투자자들이 실망하게 하기작했다. 다른 은행보다 규모가 작아 높아진 규제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으며 이후 지속적인 비용 절감이 이어지면서 IT 부문 등에 대한 투자는 억제됐다.

매출은 결국 계속 감소해 2019년에는 216억스위스프랑을 기록했다. UBS보다 25% 적은 것이다. 2010년 두 은행의 매출은 320억스위스프랑으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경쟁사들은 위험 억제에 노력했지만, CS 투자은행은 계속해서 위험을 추구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대형 은행의 막강한 화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위험을 무릅썼고 이런 문화는 은행의 다른 사업부에도 확산했다.

한 전직 임원은 위험 감수를 억제하는 데 필요한 지휘와 통제 구조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비난과 추문이 잦아졌고, 벌금과 소송은 빠르게 증가했다.

CS는 지난 2020년부터 2022년 사이에만 합의금과 보상금으로 40억달러를 지불했다. 연차 보고서를 보면 12페이지에 걸쳐, 소송과 합의, 정부 조사와 관련한 내용이 1만단어 이상 할애됐다.

은행 규제 관련 자문을 맡고 있는 미국 소재 컨설턴트 메이라 로드리게즈 발라다레스는 "CS의 수십년간 이어진 문제는 사업상의 위험 관리이며 이것은 정말로 수십 년을 의미한다"면서 "영국도, 미국도, 스위스도 다들 그냥 넘어갔다"고 말했다.

◇ 구조조정 노력도 물거품…그린실·아케고스 사태로 거액 손실까지

두건 CEO 당시 CS가 고객들의 미국 세금 회피를 도와줬다는 혐의로 유죄를 인정받으면서 2015년 티젠 티암이 CEO로 올랐다. 그는 다수의 조직 개편에 착수했다. 은행 경험이 거의 없는 외부인이었던 티암은 투자은행을 축소했다. 그는 UBS와 마찬가지로 부유층을 상대로 한 사업을 미래의 CS가 갈 길로 봤다.

티암은 CS 최대 투자자들 일부로부터 조직개편과 관련한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임기 중 그는 뉴욕의 투자은행과 특히 긴장 관계를 유지했으며 당시 회장이었던 얼스 로너와도 때때로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다.

그는 2016년 발언에서 "지금 매우 인기가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내 직업은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티암이 CEO를 맡은 이후 조직 개편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대부분은 부유층으로 사업을 집중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8년 가운데 7년 동안 구조조정 비용이 1억달러를 넘었으며 총 28억달러가 소요됐다.

티암은 그러나 2020년 자산관리 헤드 미행 스캔들이 터지면서 내부의 압력이 커져 사임했다.그는 당시 내부 감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부인했다.

월가 대부분 은행과 마찬가지로 CS의 트레이딩 데스크는 코로나19 이후 인력이 쇄도했다. 부양책과 인수합병 등으로 금융시장은 큰 호황을 맞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CS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고 결국 2021년 3월 문제는 수면 위로 부상했다. 당시 공급망 업체인 그린실 캐피털과 관련해 10억달러의 자산을 동결했으며 고객사인 아케고스 캐피털이 디폴트에 빠지면서 무려 55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외부 법률가들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CS는 위험에 눈을 감고, 비용을 줄이고 위험 관리 투자에 실패했다. 투자은행의 관리 및 통제에 근본적인 실패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CS는 곧바로 사태를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울리히 쾨르너 신임 CEO와 악셀 리먼 회장 체제에서 은행은 2022년 급진적 구조 개편을 전개했다. 자본을 조달하고 9천명을 감원하기로 했으며 CS 퍼스트보스턴으로 유명한 투자은행 분사에 착수했다.

자본 조달로 CS는 재무 건전성을 확보했지만, 중앙은행의 급격한 금리 인상과 맞물리면서 시장은 CS에서 돌아섰다. 하필 SVB가 파산한 시기와 맞물려 CS는 연례 보고서를 통해 "중대한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후 CS 최대 주주가 추가 자금 지원은 없다고 밝히면서 시장을 강타했으며 투자자와 고객들의 신뢰는 바닥을 치고 지난주에는 은행에서 수백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스위스중앙은행까지 나서 자금 지원을 했지만 19일 UBS가 CS를 32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사태는 마무리됐다. 2007년 CS의 시가총액은 한때 960억달러에 달했다.





sm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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