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2011년 8월 5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정부 부채 문제를 이유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AA+'로 한단계 강등했다. 당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재정지출 삭감 없이는 부채한도 상향이 불가능하다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에 각을 세웠고, 결국 연방정부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시한인 8월 2일, 극적으로 부채한도 협상이 타결됐지만 S&P의 신용등급 강등은 막을 수 없었고, 이 여파로 주가가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최근 금융권에선 지역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의 파산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글로벌 금융시장이 또 하나의 미국발 위협에 직면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부채한도를 둘러싼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미국 정부가 디폴트에 빠지거나 2011년과 같은 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재발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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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정부의 부채한도는 31조4천억 달러(약 4경 2천200조 원)로, 최근 재무부는 디폴트 시기를 일컫는 이른바 'X-데이트'를 오는 6월 1일로 제시하기도 했지만, 민주당 정권과 야당인 공화당은 16일 열린 두 번째 협상에서도 합의에 실패하는 등 부채한도 문제를 둘러싸고 좀처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재닛 앨런 재무장관은 같은 날 연설에서 "미국의 디폴트는 경제적, 재정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에선 정부가 부족한 예산을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고, 의회는 재정건전성과 달러화 가치 안정을 위해 정부 부채의 상한선을 정하는 시스템을 1917년부터 운영해 오고 있다. 제도 시행 후 정부가 요청하면 의회가 상한을 높이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였다. 그러나 정치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부채한도와 관련한 논쟁이 점차 격화됐고, 2011년과 2013년에는 실제 디폴트 위기로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2023년 부채한도 협상이 과거 오바마 정부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잇따랐다. 포브스는 "2011년 위기도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해 민주당 대통령과 맞서는 와중에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내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강경파의 입김에 휘둘리는 상황이 당시와 닮았다는 것이다.

2010년 공화당 내 강경파 '티파티'가 세력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선출된 존 베이너 전 하원의장은 "(정부의) 흥청망청 지출을 끝장내겠다"며 부채한도 협상과 관련해 배수의 진을 쳤다. 티파티에 뿌리를 둔 '프리덤 코커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케빈 매카시 현 하원의장도 베이너 전 의장과 같은 처지로, 벼랑 끝 전술을 펼 공산이 크다.


CDS 프리미엄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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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금융시장에서 2011년과 같은 혼란 상황이 재발할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향후 1년 내 만기 되는 미국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독일의 약 50배, 불가리아·크로아티아·그리스·멕시코·필리핀과 같은 국가의 약 3~8배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2023년 5월 15일 13시 27분 송고된 '美 부채한도 협상 난항, 장기적 악영향 미칠 것' 제하 기사 참조.)

또 2013년 부채한도 협상이 교착됐을 당시 연준 당국자들이 실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한 달 동안 채무불이행 상태가 유지될 경우 주식과 달러화 가치가 각각 30%, 10% 하락할 것으로 추정됐다. 위험도가 큰 신흥국 주식 및 채권에 대한 투자 수요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 가격 변수가 급등락하고, 기업의 자금 조달도 어려워지는 등 실물경기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등 월가 대형 은행들은 부채한도 협상이 결렬될 경우에 대비해 컨틴전시 플랜을 짜는 등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관련해 옐런 재무장관은 오는 18일 워싱턴에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 브라이언 모이니한 뱅크오브아메리카 CEO, 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CEO와 회동할 예정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19~21일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과 연계한 순방 일정을 단축했다. 미국 정치권의 부채한도 협상이 금융시장에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주목해야 할 때다. (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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