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튀르키예(터키) 중앙은행은 올해 2월 23일 기준금리인 1주일 만기 레포 금리를 8.5%로 50bp 인하해 시장 참가자들의 놀라움을 샀다. 같은 달 6일 튀르키예를 강타한 지진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욱 커졌는데도 통화완화 행보를 이어간 것이다. 당시 튀르키예 동남부를 강타한 강진으로 사망자는 4만 명을 넘어섰고, 경제적 손실은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하는 840억 달러로 추산됐다.

튀르키예의 물가 상승률은 2022년 말 기준 25년 만의 최고 수준(84%)으로, 미국 등 주요국은 고물가에 대응해 긴축 행보에 속도를 더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튀르키예는 같은 해 7월부터 11월까지 4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9.0%로 500bp 낮췄다. 이렇게 되자 달러-리라 환율이 달러당 18.85달러까지 급등(리라화 가치 급락)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달러-리라 환율은 2018년 상반기만 해도 5리라를 밑돌았다.


달러-리라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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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현지 지진 피해와 관련한 언론의 관심이 줄어들고, 튀르키예 중앙은행 발 금리 인하 소식도 전해지지 않으면서 튀르키예 이슈는 금융시장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랬던 금융시장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이달 28일 결선 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재선에 성공하자 다시 긴장하고 있다. 이번 대선 승리로 짧으면 2028년, 길면 2033년까지 사실상 종신 집권의 길을 연만큼 기존의 권위적이고 비정통적 통화정책이 장기간 유지될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는 성장률 제고를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면서 자국 통화가치의 하락을 유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금리는 만악의 근원'이라는 종교적 수사를 무기로 금리 인하 요구에 미온적인 중앙은행 총재를 여러 차례 경질했다. 그의 당선 소식에 달러-리라 환율은 20리라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또다시 갈아치웠고, 올해 전망치를 26리라까지 높여 잡는 전망까지 나왔다.(2023년 5월 30일 오전 7시 54분 송고된 'CE "튀르키예 리라화, 올해 25% 폭락 가능성"' 제하 기사 참조.)

문제는 통화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면 정부나 기업 등 외화 대출 기관들의 이자와 원금 상환 비용이 급증하게 된다는 점이다. 튀르키예 정부나 기업들의 달러채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 경제 부양을 위해 돈을 쏟아붓는 동안 튀르키예는 외화 부채를 크게 늘렸다. 튀르키예의 외화부채 문제가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는 의미다.

또 튀르키예 은행들의 주가는 대선 1차 투표 이후 20% 넘게 하락했고,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국가 디폴트 우려를 반영해 최고 200bp 급등했다. 지난 주말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튀르키예 증시를 추종하는 iShares MSCI 튀르키예 ETF 발로 2018년 3월 이후 최대 규모인 3천100만 달러의 순매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선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제적 신뢰'를 약속하며 기존의 초저금리와 강력한 시장개입 정책에 변화를 줄 수 있음을 시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가 선임할 경제팀의 면면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안도감을 줄 경우 예상보다 상황이 호전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에르도안 대통령이 그간 고수해온 비정통적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 보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그는 최근 한 외신 인터뷰에서 "선거 후 내 말을 확인하라. 금리와 물가가 함께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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