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태 기자 = 한때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됐던 다큐멘터리 '차이나 허슬'에는 행동주의 공매도 투자자가 영웅적인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머디워터스 리서치를 설립한 카슨 블록은 미국의 공매도 행동주의자다. 나쁜 기업을 저격하고, 주가 하락으로 돈을 번다. 부정한 기업이 많아 시장이 더러울수록 먹거리가 많다. 회사명은 "물고기는 흙탕물에서 잘 잡힌다"라는 뜻의 혼수모어(混水摸魚)에서 차용했다.

공매도 행동주의는 일반 행동주의와 비슷하다.

행동주의자는 기업의 저평가 요인을 분석하고, 캠페인을 펼친다. 다른 주주와 소통하며 주가 정상화를 도모한다. 공매도 행동주의자는 나쁜 기업의 비리를 밝혀내고, 사회에 알린다. 돈을 벌려고 공매도를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쁜 기업을 처단하는 영웅이 된다.

머디워터스는 루이싱커피를 쓰러트렸다.

중국판 스타벅스로 불렸던 루이싱커피는 14억 명 중국인의 차 문화를 커피 문화로 바꿔가던 회사였다. 나스닥 상장사로 미국인을 포함한 전 세계 투자자의 관심 종목이었고, 2020년 1월에 시가총액이 120억 달러(약 15조6천억 원)에 달했다.

같은 달 카슨 블록은 지인으로부터 89쪽짜리 보고서를 받았다. 루이싱커피가 매출을 부풀리고 있다는 내용이었고, 그 정보는 그의 트위터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루이싱커피는 매출 조작을 시인했고, 주가는 하루 만에 75% 폭락했다.

니콜라도 공매도 행동주의가 밝혀낸 부정 기업 중 하나다.

'제 2의 테슬라'로 불렸던 니콜라의 창업자 트레버 밀턴은 수소 연료로 달리는 대형 트럭을 앞세워 투자자를 현혹했다. 니콜라의 시가총액이 한때 포드 자동차를 추월할 정도였다.

하지만 힌덴버그 리서치가 2020년에 니콜라의 실체를 폭로했다. 니콜라가 홍보용으로 썼던 수소 트럭 주행 영상은 내리막길에서 차를 굴린 눈속임이었다. 한때 60달러를 넘어섰던 주식은 휴짓조각이 됐고, 힌덴버그는 거짓말을 밝힌 대가로 큰돈을 만졌다.

공매도 행동주의자의 폭로가 늘 맞는다고 할 순 없다. 이들은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독일에선 당국이 투자자를 보호한다고 특정 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하기도 했다. 독일 핀테크 기업 와이어카드 사례다. 그럼에도 와이어카드가 회계부정을 저질렀다는 진실은 결국 드러났다. 나쁜 기업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해낸 영웅은 당국이 아니라 공매도 투자자였다.

우리나라에서 공매도는 악으로 여겨진다. 공매도 카르텔을 금융회사와 금융당국 등이 형성하고 있다는 주장을 인터넷 댓글 창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뿌리 깊은 불신이다.

당국은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며 공매도를 중단시켰다. 하지만 오히려 개인투자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행동주의자가 무너진 신뢰를 회복시킬지 모른다. 이들은 시장에서 불량 기업을 잡아내는 동시에 공매도로 함께 돈 벌 기회를 개인에게 제공할 것이다. 또한 호가창 뒤의 투자자가 대중 앞으로 나와 설득력 있는 매도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면 매수 리포트 일색인 리서치센터에도 새바람이 불 것이다.

한때 기업사냥꾼으로 매도됐던 행동주의에 대한 인식은 이미 바뀌고 있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의 활약이 지지를 받는가 하면, 소액주주를 돕는 주주운동 플랫폼이 만들어졌다. 공매도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 국내에서도 악당 기업을 잡아내는 공매도 행동주의자가 등장하길 기대한다.

ytseo@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08시 03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