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대한민국 성인 중 재개발·재건축사업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전국에서 진행된 도시정비사업 자체가 상당할 뿐 아니라 그 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분쟁 소식이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이는 도시정비사업의 특성상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보니 추진 및 진행에 있어 대·내외적으로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시공사 선정까지 이루어졌더라도 공사비, 공사 범위와 같은 핵심적인 부분의 갈등이 지속돼 일정에 차질을 빚거나 소송이 진행되는 등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음을 시사한다.

특히 시공사와 조합의 분쟁은 시공자 선정 취소 및 도급계약 해제(또는 해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동안 건설업계에서 시공사 변경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왔기에 전 시공사가 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시공사 지위 확인 등의 소송에서 패소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최근 조합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등 전 시공사 측에 유리한 취지의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GS건설 등 전 시공사가 방배5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사건을 들 수 있는데, 지난달 위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었다[대법원 2023.10.12. 선고 2020다246999(본소), 2020다247008(반소) 판결]

위 사건의 1심, 2심, 3심 판결을 살펴보면, 이행이익으로 인정된 정도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으나 공통되게 해당 조합의 공사계약 해제에 따른 손해배상 의무를 인정하고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공사계약이 이행되었더라면 원고들이 얻을 수 있었을 이행이익 상당액으로 보고 있다.

전 시공사의 채무불이행 등 귀책이 제대로 입증되지 않는다면 조합의 시공사 변경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는 판례의 경향에 비춰보면 전 시공사와 조합 사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사실상 이행이익의 산정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가능성이 상당하다.

그러나 실제로 진행된 바 없는 공사를 가정해 그 이익을 추측하는 일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적절한 손해배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도급계약이나 합의된 공사 내용에 따른 이행을 전제로 하되 경제 상황, 물가 변동 등도 충분히 참작하여 그 결과가 현실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

이행이익의 산정에 관한 확립된 판례에 따르면, "법원은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담을 지도 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취지상 피고의 채무불이행과 원고들의 손해 발생 경위, 원고들의 손해의 내용과 성격, 원고들이 이 사건 공사계약 해제로 인해 면할 수 있었던 비용과 사업상 위험 등 여러 사정을 두루 고려해 객관적으로 상당한 손해를 산정"할 수 있다.[대법원 2004.6.24. 선고 2002다6951, 6968 판결, 대법원 2011.11.10. 선고 2011다41659 판결 등 참조]
또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재산적 손해의 발생 사실은 인정되나 구체적인 손해의 액수를 증명하는 것이 사안의 성질상 곤란한 경우, 법원은 증거조사의 결과와 변론 전체의 취지에 따라 밝혀진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채무불이행과 그로 인한 재산적 손해가 발생하게 된 경위, 손해의 성격, 손해가 발생한 이후의 제반 정황 등 관련된 모든 간접사실을 종합하여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의 범위인 수액을 판단"할 수 있다.[대법원 2004.6.24. 선고 2002다6951, 6968 판결, 대법원 2007.12.13. 선고 2007다18959 판결 등 참조].
다만, 법원이 위와 같은 방법으로 구체적 손해액을 판단할 때는 "손해액 산정의 근거가 되는 간접사실들의 탐색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고, 그와 같이 탐색해 낸 간접사실들을 합리적으로 평가하여 객관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손해액을 산정"해야 한다.[대법원 2007.11.29. 선고 2006다3561 판결, 대법원 2009.9.10. 선고 2006다64627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이러한 법리를 토대로 방배5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사건에서도 원심이 손해액 산정의 근거가 되는 간접사실들의 탐색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손해액을 산정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객관적·합리적 손해액 산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보아 원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 환송했다.

이러한 판시는 이행이익 상당의 손해액이 신중히 판단되어야 함을 전제로 재판부의 재량을 축소하고 증거 위주의 소송 결과를 도출하도록 하는바, 판결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공사 변경 또한 조합과 전 시공사의 분쟁에 따른 결과이므로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고려할 때, 이행이익 산정을 위한 감정의 진행부터 법원의 최종 판단에 이르기까지 제반 사정을 충분히 참작해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전 시공사가 공사를 실제로 진행하였더라면 얻었을 이윤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조합의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판결은 조합과 시공사의 협상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데, 건설공사비지수의 지속적인 상승으로 인해 조합과 시공사의 공사비 증액 분쟁이 많아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 보인다.

도시정비사업 분쟁 관련해 이행이익 산정에 관한 구체적인 법리들이 확립되어, 조합과 시공사 사이의 현재 계속 중인 소송 그리고 앞으로 발생할 분쟁에서 손해배상제도의 취지와 현실에 부합하는 보다 타당한 결과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법무법인(유) 충정 김지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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