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세계 최고의 극작가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희곡 중에는 가볍게 읽을 만한 작품도 많은데 그중 하나가 우리에게 '헛소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Much Ado About Nothing'이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사랑에 빠진 남녀를 둘러싼 각종 사건·사고를 유쾌하게 풀어낸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는 이른바 고전의 반열에 오른 희곡이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미국 이민당국의 한국인 노동자 구금사태를 바라보며 떠 오른 단어는, 뉘앙스는 전혀 다르지만, '헛소동'(MAAN)이었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공장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에 공급할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지난 2023년 5월 합작 공장을 짓기로 했다. 총투자 금액은 무려 5조7천억원, 달러로 환산하면 43억 달러에 달하는 거액이다. 예정대로 완공된다면 이 공장에서는 고성능 순수 전기차 3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배터리를 제조한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작해 트럼프 행정부에서 완공될 이 공장은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웠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체감할 수 있는 일대 사건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무도한 미국 이민 당국의 한국인 노동자 구금사태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4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국토안보수사국(HIS) 등 연방정부기관은 한창 공사 중인 합작공장을 급습했다. 이들은 우리 노동자 300여명을 포함한 475명을 체포해 구금시설로 끌고 갔다. 언론에 공개된 체포 장면에는 우리 노동자들이 쇠사슬에 묶인 영상도 있어 충격을 줬다. 미국 ICE는 현지에 파견된 우리 노동자들이 단기출장(ESTA, B1 비자) 형태로 왔으면서 기술 지원 등의 노동행위를 했다면서 이것이 이번 단속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미국 이민당국의 이런 주장에 대해 현지 변호사 등은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이들은 B1비자 보유자는 미국 밖에서 구입한 장비나 기계를 설치해 서비스 또는 수리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관련 법 위반 여부는 세세하게 따져봐야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각론을 떠나 미국 정부의 이런 태도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자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라면서 이를 위한 취업비자 등 관련 제도는 하나도 정비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우리 정부가 이런 문제점을 선제적으로 제기했어야 한다고 하지만 억지다. 투자를 요청한 나라에서 외부 투자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자국 내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상식이다. 미국에는 이런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상식이 없는 나라에 어떤 깜냥 좋은 기업이 수십조를 투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자국에 대규모 시설투자를 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방문한 외국 노동자와 서비스직 일자리를 노리고 국경을 무단으로 넘어 침입한 외국 노동자도 구분 못 하는 게 미국 ICE의 실력이라면 할 말이 없다.
일부에서는 미국 정부가 배터리 공장 운영 노하우를 노린 게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언어도단이다. 대부분의 제조업 공장이 그러하지만, 배터리 공장의 경우 운영 노하우가 특히 중요하다. 자칫 잘못 다룰 경우 대규모 폭발 등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숙련된 노동력이 그 어느 분야보다 필요한 것이 배터리 제조 공장이다. 그런 핵심 기술 인력을 쇠사슬로 묶어 끌고 가서 마약상이나 가둘 법한 구금시설에 처박아 놓고 기술이전을 바란단 말인가. 미국이 깡패 국가로 부르는 제삼 세계 국가에서도 자국에 투자한 해외기업을 이렇게 대우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뒤늦게 비자 제도를 개선해야 하느니 미국 노동자에 대한 기술 이전 교육이 필요하다느니 말을 꺼내고 있지만 끝났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차라리 관세를 내자는 말이 나오는 형국이다. 지난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작해 트럼프 행정부로 이어지던 해외 기업의 미국 투자는 더는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 경제 10위 국가를 이렇게 대우하는데 유럽이나 다른 선진국인들 배짱 좋게 미국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
미국 정부가 뒤늦게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면 이번 사태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그나마도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MAGA 극장은 텅 빈 객석에서 세익스피어의 MAAN을 틀게 될 것이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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