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오픈런 부추기는 '통합증거금' 도마 위…MAR 환율 등 대안 거론
업계 "취지 공감하나 시스템 개편 부담…高환율, 펀더멘털 변화가 더 큰 원인"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미 이규선 기자 = 외환당국이 주요 증권사 환율 담당자들을 긴급 소집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학개미 매수세가 폭발하며 증권사들의 달러 조달 방식이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달러-원 환율이 1,500원을 위협하자 환시 '큰손'인 국민연금과 수출기업에 이어 증권사 외환 담당자들을 불러 협조를 구하고 나섰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외환당국은 지난 21일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외환시장협의회(외시협) 소속 9개 증권사 외환 담당자들을 모두 불러 비공개 회의를 가졌다. 주요 수출입기업과 국민연금에 이어 증권사 담당자까지 만난 것이다.(연합인포맥스가 지난 17일 송고한 '삼성전자·현대차·조선사 만난 외환당국…꼬인 달러 수급 풀리나' 제하의 기사 참고)
통상 환율 급등기에는 거래량이 많은 시중은행·외국계 은행이나 삼성전자, 국민연금 등과 같은 대형 참가자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최근 환율 상승의 트리거 중 하나로 서학개미들의 결제 수요가 지목되면서 당국의 타깃이 증권사로 확대됐다.
실제로 서학개미의 매수세는 매우 가파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68억 달러에 달했고, 이달 21일까지도 45억 달러를 기록했다.
◇"30달러 팔고 50달러 사면 20달러만"…문제는 '9시 쏠림'
당국은 이번 회의에서 증권사들의 통합증거금 시스템과 관련된 환전 관행을 집중적으로 짚은 것으로 전해졌다.
통합증거금 제도는 계좌 내 원화뿐만 아니라 달러, 엔화 등 보유 중인 모든 외화 자산과 결제 예정금까지 하나로 묶어 주문 가능 금액으로 인정해 주는 서비스다.
이 제도의 핵심은 거래 건별 환전이 아닌, 결제일 기준 상계(Netting) 처리에 있다.
증권사 입장에서 이 시스템은 환전 효율을 극대화하는 장치다.
예컨대 A 고객이 30달러를 팔고 B 고객이 50달러를 샀을 때 개별 건으로 처리하면 총 80달러의 거래가 필요하지만, 통합증거금 시스템하에서는 내부 상계를 통해 차액인 20달러만 매수하면 된다.
시중은행들이 주간에 타행 간 송금 내역을 모아뒀다가 야간에 차액만 정산하는 것과 유사한 원리다.
문제는 이 '최종 순액(Net amount)'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거래 내역을 확정 짓는 정산 기준 시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증권사들은 밤사이 이 기준에 맞춰 확정된 달러 부족분을 이튿날 오전 9시 서울 외환시장 개장 초반 한꺼번에 사들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당국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매수 주문이 장 초반 수급 쏠림을 유발하고 환율을 구조적으로 밀어 올린다고 보고 있다.
◇당국, MAR·실시간 환전 대안 제시…업계 "구조적 딜레마"
회의에서 당국은 쏠림 현상 완화를 위해 시장평균환율(MAR) 활용 혹은 실시간 환전 확대 등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장 직후 등 특정 시간대가 아닌 하루 평균 가격으로 정산하거나, 주문 즉시 환전해 수요를 분산하라는 취지다.
업계는 특정 시간대 변동성 확대라는 당국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인 적용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당국이 제시한 MAR 환율은 달러-원에는 적용 가능할지 몰라도 이종통화 간 거래에는 적용이 어렵고 T+1일 등 결제 시차 문제도 있어 현실적인 대안이 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실시간 환전으로 전환할 경우 네팅(상계)이 불가능해져 수수료 혜택을 보는 단타 투자자나 고객들에게 비용 전가가 일어날 수 있다"며 "유동성이 적은 야간에 큰 규모를 환전하는 것이 리스크를 더 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오전 9시 환전 집중이 통합증거금 도입 이전인 가환전 시절부터 있었던 오랜 관행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코로나19 이후 해외주식 투자가 급증하고 통합증거금 규모가 커지면서 그 영향력이 부각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전산 시스템 개편에 대한 부담도 호소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당국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최근 금융권의 화두가 전산 안정성인 데다 내년 24시간 외환 거래라는 큰 제도 변화를 앞두고 있다"며 "대고객 전산 개발이나 정책 변경을 당장 단행하기에는 업무적 부담이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당국은 이번 점검이 '금융소비자 보호'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강조했다.
증권사들의 기계적인 장 초반 매수가 환율을 인위적으로 밀어 올리고 그 높아진 가격(정산 환율)이 고객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이번 회의의 핵심은 고객들이 불필요하게 비싼 환율에 달러를 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는 데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인위적으로 환율을 끌어올린 뒤, 높은 가격을 정산 환율로 적용해 고객에게 넘기는 경우가 있는지 우려된다"면서 "소비자는 시장평균환율(MAR)이나 시중은행 고시율보다 매일 더 비싸게 환전하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smjeong@yna.co.kr
kslee2@yna.co.kr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