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재영 기자 =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 'IFA 2014'가 열린 독일 베를린.

이곳에서 삼성전자는 더이상 '한국 기업'이 아니었다. 외국인이 흔히들 '쌤썽'으로 발음하는 삼성은 글로벌 기업의 면모를 부족함 없이 갖추고 있었다.

삼성이 IFA에서 공식적으로 주재한 각종 행사는 100% 영어로 진행됐다. 스태프들도 태반이 외국인이었다.

행사 중간 중간에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온 영상 자료에도 우리나라를 연상할 수 있을 만한 장면은 없었다. 오히려 중국인과 일본인이 나와 한편으론 야속하기까지 했다.

행사장 바깥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파란색 띠에 'SAMSUNG'이 적힌 흰색 중절모자를 쓴 파란 눈의 서양인들이 시내 곳곳에서 보였다. '한국은 몰라도 삼성은 알더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윤부근 삼성전자 CE(생활가전) 부문 대표의 IFA 개막 기조연설은 업체들의 부스가 마련된 만국박람회장(Messe Berlin)이 아닌, 시티 큐브 베를린(City Cube Berlin)에서 이뤄졌다.

시티 큐브 베를린은 삼성이 이번 IFA를 위해 단독으로 빌린 별도 건물이다. 삼성의 '안방'에서 IFA 개막식이 진행된 셈이다.

기조연설이 이뤄진 무대 전면에는 곡면의 구조물들이 설치돼 삼성이 TV사업에서 강조하는 '커브드(Curved) 철학'이 도드라졌다.

IFA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케 했다. 윤 대표의 기조연설을 지켜본 삼성의 한 임원은 "삼성이 글로벌 기업들 앞에서 가전업계의 방향을 제시했다"면서 감격했다.

각국에서 모여든 취재진 틈바구니에서 윤 대표의 기조연설을 듣고 있자니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현대차가 벤츠와 BMW, 폭스바겐 앞에서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제시한다면 어떨까. 글로벌 회사로 변모한 삼성의 윤부근 대표가 밀레(Miele)와 소니(Sony) 앞에서 '미래 가전의 모습은 이래야 한다'고 제시한 것처럼 말이다.

삼성전자 말고 글로벌 시장에서 이렇다 할 인지도를 가진 국내 기업은 현대차 정도다.

미 경제전문지 포춘지(誌)는 삼성전자를 글로벌 500대 기업 중 13위로 꼽았고 현대차는 100위에 올렸다. 현대차 다음으로 순위에 오른 한국 기업은 포스코와 LG전자인데, 이들은 200위권으로 밀려나 있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서 전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보니, 마음 한켠에 가라앉아 있던 애국심마저 솟아났다.

하지만 삼성과 현대차 말고는 딱히 한국산(産) 글로벌 회사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웠다.

삼성 임원이 윤 대표의 기조연설 모습을 보고 느꼈다는 감격을 훨씬 더 많은 국내 기업 경영진도 느낄 수 있길 기대한다.

jy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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