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한은맨들이여전히 못마땅한 듯 하다. 취임 직후 "한은은 태평성대"라며 중앙은행 직원들의 무사안일한 자세를 꼬집었던 김 총재는 2년여가 지난 지금도 내부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태세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한은 팀장 워크숍.

김 총재는 2주 전 부서장 워크숍 연설 때와는 달리 이번 워크숍에서는 내부 조직 문제에 방점을 뒀다. 'BOK-Man(한은맨)'의 사고와 행동에 대한 7개의 과제를 토론 주제로 던졌다.

발언 내용은 작정한 듯 거침이 없었다. 김 총재 특유의 의표를 찌르는 질문방식의 연설로 참석자들을 당혹케했다는 후문이다.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정해본 경험이 있느냐.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조직의 장이 돼 조직을 이끌 수 있나. 지금 자리에서 성과를 내려기보다는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하나 걱정하는 것은 아닌가."

김 총재는 한은 내부의 '불편한 진실'도 언급했다. 본인 스스로 "우리 조직에는 불편한 진실이 여럿 있다"고 고백했다.

먼저 고질적인 인사적체 문제다.

그는 "종합직렬 1천500여명 중에 1982년 이전 입행 직원 수가 무려 300명이 넘는다. 3급 승진이 1급 승진보다 더 어려운 인사구조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30년 이상 장기 근속자수가 전체의 20%에 달해 조직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차장급인 3급 승진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오랜 인사적체에 따른 후유증이다. 2급(부국장급)에서 1급(국장급)으로 승진하는 데 통상 3~5년이 걸리는 것과 달리 4급(과장급)에서 3급 승진은 8년이 넘게 걸린다.

간부들의 무사안일한 자세에 대한 질책도 나왔다.

김 총재는 "행내 현상논문은 4~5급만 참여하고, 고위직에 오를수록 글을 쓰지 않는 것은 문제다"고 말했다.

부서장 워크숍 당시 "학위소지자의 마지막 논문이 학위논문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단 한 편의 논문을 남기지 않고 중앙은행 생활을 끝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라고 지적했던 내용의 연장선상이다.

김 총재의 거듭된 주문에 대한 한은 내부의 반응은 극과 극을 달린다.

총재의 넘치는 에너지와 비전 제시 능력에 대해서는 존경을 표하는 이가 많다. 그동안 자기개발과 혁신이 부족했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총재의 '과도한 디테일'이 조직 전체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중앙은행 총재는 한은조직의 수장이기에 앞서 통화당국의 수장이다. 통화정책을 제대로 운영하고 물가 안정을 위한 고민이 최우선이 돼야 하는데 직원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챙기는 데 에너지를 소진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

한 간부는 "남은 임기 2년은 내부 개혁에 매진하기보다 통화당국 수장으로서 대내외적으로 존경받는 총재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책금융부 채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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