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황병극 기자 = 미국에서 법인세 인하가 공식화하면서 한국만 세계적인 법인세 인하 추세에 역주행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재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여당인 공화당은 27일(현지 시간) 법인세를 현행 35%에서 20%로 낮추는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기간에 법인세율을 15%로 낮추겠다고 공약했으나 이번에 20%를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상 최대 감세안"이라며 "부유층에게는 혜택이 거의 돌아가지 않고, 중산층 이하 계층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법인세 인하와 반대의 선택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8월초 발표한 세제 개편안을 통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의 22%에서 25%로 3%포인트 올리면서 과세표준 2천억원 이상의 대기업에 한해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췄던 것을 환원한 것으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은 28년 전인 1990년 이후 처음이다.

이번 정부에서 법인세와 소득세를 인상한 것은 조세의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조세의 형평성을 높이고 소득의 재분배를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부담 여력이 있는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세금을 더 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주요국 중에서 최하위 수준의 조세 부담률과 복지 현실을 고려할 때 그동안 대기업에 집중됐던 과도한 세제혜택을 향후 성장과 복지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저간의 여론도 정부의 세제개편 방향에 힘을 보탰다.

문제는 한국이 글로벌 감세정책에 역주행을 지속할 경우 자칫 재계는 물론 국내경기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 중에서 28개국이 법인세를 인하했다. 우리나라 주변국의 경우에도 대만과 싱가포르의 법인세율은 17%에 불과하다. 태국도 한국보다 낮은 20%에 그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했던 법인세율 15% 인하가 현실화되고 한국이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을 각각 3%포인트 인상할 경우 국내에서 투자 감소가 연간으로 14.3%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국내 총생산(GDP)가 5.4%나 감소하고, 고용 감소 규모도 38만2천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한국 정부가 법인세율을 1%포인트 인상하면 경제성장률은 최대 1.13%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나아가 국내에서 법인세율 인상과 맞물려 미국의 감세가 현실화되면 자본유출이 확대되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부정적일 것이란 평가도 여전하다.

이런 이유로 임동원 한경연 연구위원은 지난 7월 보고서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제도가 유리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장 국내 기업에 세금을 많이 걷는 것보다 우리나라를 세계 기업의 활동무대로 만들어 그 규모의 확대를 통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세금 부과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계가 그동안 법인세율 인상 유보를 호소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법인세율 인하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만 법인세율을 인상하면 세수와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드는 악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며 "국내에서의 법인세율 인상도 궁극적으로 세수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보다는 경기 위축을 자극해 중장기적으로 세수 총량을 줄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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