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채권시장은 아직 철이 안 든 걸까
[데스크 칼럼]채권시장은 아직 철이 안 든 걸까
  • 한창헌 기자
  • 승인 2019.06.2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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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통위 의장의 소통법 두 번째 이야기



(서울=연합인포맥스) 15년 전 서울채권시장은 '철이 없는' 곳이었다. 당시 한국은행 총재였던 박승 총재는 그렇게 평가했다. 박 총재는 2004년 10월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치고 가진 간담회에서 "채권시장이 철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 채권시장이 한은보다는 정부의 비관적인 경기 진단에 무게를 두고 금리인하 베팅에 나선 것을 비판하면서 나온 얘기다.

박 총재의 발언 직후 채권시장은 패닉으로 치달았다. 국고채 금리는 당일에만 30bp(0.3%) 넘게 치솟았다. 다음 달 금통위는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당시 콜금리)를 인하했다. 시장은 분노했고 한은과 총재의 신뢰는 곤두박질쳤다.

채권시장의 금리인하 베팅 강도가 만만찮은 요즈음 이주열 총재도 시장을 '철없는' 곳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이 총재는 지난 5월 금통위 간담회에서 회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동철 금통위원이 금리 인하 소수의견을 낸 것만 공개했을 뿐 사실상 소수의견을 낸 위원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것은 알리지 않았다. 실제 소수의견은 아니니 공개할 의무는 없지만, 그의 발언 뉘앙스에서도 그런 분위기는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금통위원 전체 입장을 대변하는 금통위 의장으로서 회의 분위기 전반을 잘 설명했다고 보지 않는다.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가 일방적으로 커질 것을 우려했던 걸까. 한번 꼬여버린 소통의 실타래는 거센 후폭풍으로 이어졌다. 약 2주 후 열린 한은 창립 기념식에서 이 총재의 스탠스가 확 달라졌다. 적어도 시장은 그렇게 느꼈다. 통화당국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던 시장 참가자들은 뒤늦게 금리인하 베팅에 가세했다. 앞서 외국인만 채권을 대량으로 매집한 이후였다. 그 다음 주에 나온 의사록을 통해 5월 금통위 분위기가 전해지면서 베팅의 강도는 더 세졌다. 바닥권이라 여겨졌던 채권 금리는 지하실로 처박혔다.

이주열 총재는 이런 시장의 반응을 꽤나 불편해하는 거 같다. 지난 25일 물가설명회를 겸한 출입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간담회 참석 기자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 미스'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이 총재는 "더 이상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분명하게 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통화당국은 그동안 스탠스를 분명하게 취해왔고, 한은이 공식적으로 정책 여력이 없다고 하거나 있다고 한 적도 결코 없다고 했다. 시장과의 '미스 매치'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나온 얘기가 채권시장에 적잖게 충격을 준 "통화정책 여력이 아주 많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발언이었다. 당일 채권시장에선 장 막판 급매물이 쏟아졌고, 금리는 전일까지 3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중앙은행 총재는 말 한마디로도 '오퍼레이션'을 할 수 있다. 시장에 정책 기대를 심어주거나 차단하면서 금리 수준을 조정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있는 셈이다. 돈을 풀고 들이는 일반적인 오퍼레이션보다 간단해 보이지만, 오히려 더 정밀한 기술이 필요할 수 있다. 시장 심리를 컨트롤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정책 방향을 각자 예상하고 각자 베팅한다. 당국과 시장의 소통이 잘 안 되면 의도치 않는 방향으로 쏠림이 나타나고 그 부작용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돈이 걸린 머니마켓 시장이 철들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면 그 중심은 한은이 제대로 잡고 끌고가야 한다. 시장만 탓할 것이 아니라 소통 기술을 더 키우라고 권하고 싶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chh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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