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우리나라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이 부쩍 '고용'에 꽂혔다. 한은이 지난 15일 공개한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지난달 회의 때 고용 상황을 언급한 금통위원들이 유독 많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은행 통화정책 목표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경기 회복 기대에도 고용지표는 많이 부진하고, 금통위원들이 이런 고용 상황에 주목할 것이라고 보면 시장에서 우려하는 기준금리 정상화도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11월 의사록을 보면 이주열 한은 총재를 제외한 대부분 금통위원이 고용 상황을 언급한 게 눈에 띈다. 한 금통위원은 고용 유발 효과가 크지 않은 IT업종이 최근의 경기 개선을 주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용 효과가 큰 중소기업이나 자영업, 건설업 등은 부진한 상황이라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고용 회복이 가시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다른 금통위원도 고용이 예전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비스업, 임시 일용직 등 취약 부문의 고용 사정에 앞으로도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 금통위원 대다수는 현재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상당 기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금통위원들이 유난히 고용에 주목하는 것은 무엇보다 최근 전반적인 경기 회복세에도 고용시장 불안은 여전히 큰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11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취업자는 2천724만1천명으로 1년 전보다 27만3천명 감소했다. 전월보다는 취업자 감소폭이 줄었지만, 9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6개월 연속 감소한 이후 최장기간이다. 11월 실업률은 3.4%로 1년 전보다 0.3%포인트 상승했다. 11월 기준으로 16년 만에 가장 높다.

한은 정책 목표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 본다. 한은법 개정을 둘러싼 여러 논란에도 고용 목표가 추가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통위원들도 이에 대비하려는 것일 수 있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한은 목표에 고용안정까지 추가되면 금통위원들의 의사결정 과정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관련 한은법 개정안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고용목표를 한은법 1조1항에 넣는 것을 골자로 한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 당의 박광온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은 고용목표를 1조2항에 넣는 내용이다.

세부안이 조금씩 다를 뿐 여야 정치권이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고용 목표는 어떤 식으로든 추가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통화정책으로 고용안정 목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 분위기다. 기준금리 이외에 고용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한계나 정책 목표 간의 상충 가능성 등도 극복해야 할 문제다. 국내 고용 부진이 사실상 고착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용목표 추가는 기준금리 정상화를 늦추는 요인일 수 있다. 금리에 민감한 채권시장 등 금융시장에는 호재일 수 있지만, 앞으로 통화정책의 방향키가 흔들린다면 이 자체로 시장 혼란이 가중될 여지도 있다.

이에 정책 집행자로서 현실적인 고민을 드러낸 금통위원도 등장했다. 한 금통위원은 "고용 안정을 추가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최근 발의되면서 고용지표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고용지표와 경기 간 상관관계가 낮은 상황에서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고용 상황을 판단할지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기와 상관관계가 높은 고용지표를 발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당부의 말도 남겼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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