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유경 기자 =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이 발표한 중소기업 상생방안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4대 그룹은 올해 2분기부터 시스템통합(SI)ㆍ광고ㆍ건설ㆍ물류 등 4개 업종에 대해 비계열 상장사를 중심으로 경쟁입찰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지난 16일 밝혔다.

대기업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가 지나치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그러나 이번 방안이 제대로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란 게 관련업계의 시각이다.

◇SI는 보안상 이유로 범위 제한 = 18일 업계에 따르면 4대 그룹이 중소기업에 개방할 것이라고 밝힌 업종 가운데 시스템통합(SI) 분야는 보안을 이유로 중소기업에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지적됐다.

아직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오지 않았지만, 전사적 자원관리(ERP)를 중심으로 한 사업의 주요 업무는 경쟁입찰에서 제외될 것임이 이미 명시됐다.

삼성은 일부 보안상 불가피한 분야를 제외한 신규개발 프로젝트를 경쟁입찰 대상으로 했고, 현대차는 SI 경쟁입찰 활성화 분야를 ERP 시스템과 연계가 미약한 프로젝트로 한정했다.

SK도 ERP 시스템과의 연계성이 약한 콜센터와 교육과 관련된 신규개발 프로젝트로 경쟁입찰 대상을 제한했고, LG 역시 ERP 시스템을 제외한 분야로만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각 그룹이 어디까지를 ERP 시스템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SI 분야의 경쟁입찰 개방 정도에 큰 차이가 나게 된다.

ERP란 통합적인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회사의 자금, 회계, 구매, 생산, 판매 등 모든 업무의 흐름을 자동 조절하는 전산 시스템이다.

정보산업진흥원의 한 관계자는 "ERP 시스템을 재무나 인사와 관련된 핵심 정보를 다루는 것으로 한정할 수도 있지만, 넓게 본다면 체인점이나 거래처와 관련된 경영에 쓰이는 소프트웨어 시스템 전반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ERP 제외'라는 문구를 넣지 않은 삼성도 SI 경쟁입찰 범위를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측은 "어디까지를 ERP 시스템으로 보느냐의 문제가 있다"며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ERP 시스템을 경쟁입찰에 포함할지는 여부는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보안이 필요한 ERP 시스템을 어디까지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중소기업에 경쟁입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ERP 시스템에서의 보안 문제는 대기업 IT 업체와 중소기업 IT 업체 간 기술력의 차이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기업 재무와 회계를 포함한 경영기밀이 유출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스템 구축을 외부 업체에 제공하면 관련 데이터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의 관계자는 "SI 시스템은 기업의 내부 살림과 유지ㆍ보수를 담당하는데, 이러한 시스템을 외부 업체에 발주했을 때 뒤따르는 위험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민감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관계자는 "SI 업종 경쟁입찰은 프로젝트별로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며 "대기업 IT업체는 오랜 기간 쌓아온 노하우로 종합적 역량이 크지만, 소규모 IT업체는 전문 분야에 강점이 있어 각각 특성을 살릴 수 있는 프로젝트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관련 계열사 희생하면서까지 경쟁입찰할까 =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공정위가 지난해 11월 20개 업체의 내부거래 사업자 선정 방식에 따르면 4개 업종의 수의계약 방식은 88%(계열사간 총 거래액 9조1천620억원 중 8조846억원)였다.

업종별로는 물류 99%, 광고분야 96%, SI분야 78%였다.

사실상 일감 몰아주기가 아니면 사업 유지가 불투명한 가운데, 기업이 자율적으로 얼마만큼 경쟁입찰을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대기업 계열 IT 서비스 업체들인 삼성SDS, LG CNS, SK C&C 등이 해외진출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업 분야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는데 반해, 광고 업체들은 뚜렷한 사업 개선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광고분야는 객관적 지표로 평가가 어려워 중소기업에 '들러리 경쟁입찰'을 시켜도 공정성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제일기획(삼성),이노션(현대차),마케팅앤컴퍼니(SK),HS애드(LG) 등 4개 기업이 올린 매출 1조3천194억원 중 69%인 9천66억원이 계열사 간 내부 거래로 발생했다.

물류분야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4대 그룹 주요 계열사 중 내부거래 규모가 가장 큰 편에 속하는 현대차그룹의 물류 계열사 현대글로비스는 경쟁입찰의 구체적 방안에서 물류 부분 방안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현대차는 2분기부터 SIㆍ광고ㆍ물류ㆍ건설 분야를 대상으로 경쟁입찰을 점진적으로 활성화한다고 밝히고, 경쟁입찰 활성화 분야와 관련해서는 SI와 광고, 그리고 건설 분야에 대해서만 방안을 설명했다.

중소 광고업체 관계자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점에서는 환영할만하지만, 제대로 지켜질지가 의문"이라며 "업체 선정을 객관적으로 할 수 없는 분야가 있는데 대기업이 정부에 등 떼밀려서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yko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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