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예원 기자 = "사모펀드와 관련한 은행 책임이 아직 마무리도 안 됐는데 또 사달이 나면 은행 책임 이야기가 나올까 봐 조심스럽다."

최근 가상자산거래소의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발급과 관련한 은행권의 면책요구를 두고 은행권 관계자의 내놓은 발언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이 금융당국에 건의한 이른바 '면책 요구'는 사실상 정리된 상태다.

앞서 은행권은 가상자산거래소에 대해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발급하는 과정에서 자금세탁 등 사고가 발생하면, 은행 측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아닐 경우 면책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의견을 제출했다.

관련된 조항은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 제12조8항이다. 이에 따르면 금융회사 등은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개시하려는 경우 가상자산사업자가 자금세탁행위와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구축한 절차 및 업무 지침을 확인해야 한다. 또 가상자산사업자와의 금융거래 등에 내재된 자금세탁행위와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의 위험을 식별, 분석, 평가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국회와 백브리핑 등을 통해 면책에 관한 사실상 '거절'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은 위원장은 지난 6일 '코로나19 대응 금융정책 평가 심포지엄'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금세탁에 관한 의심이 들면 FIU에 신고할 의무가 있고 그것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현실"이라며 "은행에 떠넘긴 것이 아니라 은행이 본래 할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은행권은 추후 금융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해당 조항이 또 다른 은행 책임으로 돌아올 것을 우려해 아쉬움을 표하는 모습이다.

가상자산사업자를 식별·분석·평가하기 위한 가이드라인부터 은행권이 만들어서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는 9월 말 FIU에 신고접수를 하지 못한 거래소들이 나타나는 소위 '거래소 줄폐업'으로 투자자 피해가 나타날 경우에도 은행권에 책임을 물을 소지가 있다는 점도 우려하는 부분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사고가 났을 경우에도 어떤 기준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사고가 났냐를 물을 수 있고, 반대로 계정을 내주지 않아 거래소들이 폐업할 경우에도 '지나치게 엄격하게 평가해 투자자 피해를 야기했다'는 비판을 들을 가능성도 있다"며 "다들 이러한 책임 부분과 관련해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모펀드 사태를 거치며 은행들이 판매사로서 감수해야 했던 이른바 '책임 트라우마'가 가상자산에서도 발동한 것이라는 평가다.

또 다른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당시 자산운용사로부터 비롯된 사건이 판매사들에까지 확대돼 배상은 물론 최고경영자 등 임원에까지 책임을 묻지 않았나"라며 "가상자산거래소 역시 추후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은행 책임이 또다시 엮일 수 있는 만큼 사전에 대안을 마련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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