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안정적인 소득을 바탕으로 높은 신용도를 지닌 A와 신용도가 낮은 B가 동시에 대출을 받으려고 한다. 은행은 누구에게 더 낮은 금리에, 더 많은 대출을 내주려고 할까?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보면 두말할 것 없이 A다. 은행은 돈이 떼일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A가 대출을 정상적으로 상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은행권에서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최근 신용점수 820점 이하 고객이 이용할 수 있는 중신용대출상품 최대 한도를 7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했다. 대신 그보다 신용점수가 좋은 고신용자들의 신용한도는 7천만원으로 깎았다.

연소득 3천만원 이상의 우량한 근로소득자는 최대 7천만원까지 대출되지만, 연소득 2천만원 이상 중신용자의 경우 1억원까지 대출이 되는 셈이다.

지난 5월 금융당국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설립취지에 맞게 중·저신용자 대출을 확대하라고 한 이후에 나타난 결과다. '포용적 금융'을 위한 정책적 개입 탓에 중신용자들이 되레 대출조건에서 유리해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굳이 고신용자 한도까지 줄인 배경에는 자본 여력 등도 있겠지만 대출 매력도를 어떻게든 떨어뜨리려는 게 아니었겠나 싶다"며 "통상 타 은행의 고신용자 신용대출 한도가 1억원 안팎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것이라는 계산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카카오뱅크는 고객 데이터와 통신정보 등을 반영한 새로운 신용평가모형을 적용했다. 중신용자 대출을 확대하되, 신용평가 변별력을 높여 리스크를 덜어내기 위한 수단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나오고 있는 소위 '복지적 경제정책'도 은행권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요인 중 하나다.

전일 고승범 금융위원회 인사청문회 관련 정무위원회 서면답변서에는 전국민 대상 1천만원 마이너스 대출과 기본저축 등에 대한 질의가 여럿 포함됐다. 특히 기본대출의 경우 고신용자가 금융혜택을 독점하고 있다는 시각에서 제시된 정책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이런 질의에 대해 "시장경제의 원리상 신용도에 따라 금융서비스의 이용 가격이 차별화될 수밖에 없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며 "시장실패 부분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정부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으로 이해한다"고 답변했다.

여기에 지난 24일 내년도 예산안 관련 당정협의에서는 연소득 5천만원 이하 청년에 대해 무이자 월세 대출을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된 상태다.

은행권은 리스크에 따라 차주를 선별해 대출을 내주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인 만큼 금융을 공정·평등의 관점으로만 보는 것은 자칫 위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의 논리로 봤을 때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은행권의 다른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민간기관인 은행이 그간 사회적 책임하에 일종의 공적 역할을 수행해온 게 사실이나, 은행의 본질과 사뭇 다른 방향으로 역할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앞으로 은행권이 이른바 '비상식의 상식화'에 접어들지 않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책금융부 김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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