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예원 기자 = "논두렁 음덕(陰德)이라는 것이 있다. 나도 가족들 생각해 다른 사람 마음에 최대한 칼을 꽂지 않기 위해 많이 들으려 한다"

'논두렁 정기'라고도 흔히 불리는 이 말은, 그만큼 후손이 잘되기 위해서는 그간 조상이 쌓은 덕 하나라도 더 보아야 한다는 의미다.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으로부터 들었던 얘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그는 지금 자신이 있기까지도 부모님·조부모님의 덕이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떠나는 자리에서까지 빛났던 '소통'은 이런 평소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다.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이 약 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30일 금융위를 떠났다. 이임식 현장을 함께 한 후배들이 가장 많이 꺼내든 말은 '소통'이었다.

실제로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은 임기 내내 금융시장과 금융업권, 정부 부처간 소통에 힘썼다.

은 전 위원장은 작년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으로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자 금융위원장 공개서한을 보내 시장을 달랬다. 당시 그는 "긴박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장과 언론 등과 소통이 더 자주 있었으면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시장과 더욱 잘 소통하고 시장의 의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겠다"고 했다. 당시 기업자금 위기설 등 10여가지 현안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금융위원장 서한은 올해 초 공매도 재개 등 주요 이슈와 관련해 한번 더 발표됐다. 그는 "현시점에서 이러한 이슈들이 함께 고민해볼 만한 문제"라면서 "정책결정 배경을 소상하게 말씀드리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편지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빅테크·핀테크의 금융권 진출로 인해 기존 금융권과의 갈등이 불거지자 직접 간담회를 주재하며 업권 간에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마련된 정례 협의체가 '디지털금융 협의회'다.

혁신금융서비스 1호인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서비스 '리브엠' 재지정을 앞두고 노사 갈등이 커지자 금융위 주재하에 충분히 협의할 수 있도록 지시한 것은 내부에서도 유명한 일화다. 이에 금융위는 당시 재지정 전날 늦은 밤까지 노사 양측과 해결책을 논의했다. 이는 올해 상반기 금융위 적극행정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아울러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사이에 두고 한국은행과 마찰이 빚어지자 은 전 위원장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게 직접 서한을 전하기도 했다.

한 금융위원회 간부는 은 전 위원장의 이런 행보를 두고 "소통하는 것에 대해 배울 점이 너무 많았다"며 "쓸데없는 갈등을 자제하고 문제해결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은 전 위원장은 "옆에 있는 동료가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하면서, 다투지 말고 잘 지내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임식 현장에서 금융위 후배들에게 마지막까지 갈등 자제와 소통을 당부했다. 그가 지난 2년여의 시간 동안 금융위라는 '논두렁'에 뿌려놓은 음덕이 앞으로 어떻게 발현될지 지켜볼 일이다.

ywkim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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