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국책연구기관의 깜짝 등장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을 들고나왔다. 한국은행이 최근 공개한 지난 10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통해서 금통위 지형에도 일부 변화가 감지된 터였다. 한은의 11월 추가 금리 인상은 예견된 수순이지만, 이후의 인상 속도는 둔화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가 살아날 여지가 생겼다. 내년 이후의 기준금리 정상화를 둘러싼 논쟁은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논쟁의 불씨를 키운 이는 KDI의 천소라 경제전망실 모형총괄(연구위원)이다. 천 위원은 지난 1999년 2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회귀모형 분석을 진행했다. 특히 고(高)부채 국면의 가파른 금리 인상을 경계했다. 고부채 국면에서 기준금리가 25bp 인상되면 평상시보다 경제성장률이 두 배 정도 큰 폭으로 하락한다고 봤다. 금리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률과 부채 증가율 하락폭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그는 기준금리 인상이 금융시장 불안을 일부 완화할 가능성이 존재하나 동시에 경기 회복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금리 정상화 속도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융 불안 완화에는 거시건전성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남겼다.

그동안 금리 인상이 경기 하방 압력을 키울 것이란 의견은 적잖게 나왔다. 이번엔 국책연구기관이 탄탄한 논거를 기반으로 제시한 의견이라 그 후속 파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변화가 나타난 금통위 지형을 통해서도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쉽지 않은 환경으로 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10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당시 기준금리 동결 과정에서도 매파 의견이 대세였다.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소수의견 기록을 남긴 위원은 두 명이었다. 다른 두 명의 위원도 추가 인상의 논거를 주로 제시해 매파로 분류됐다. 주상영 위원으로 추정되는 한 위원은 명백하게 비둘기파적인 의견을 남겼다. 여기까지는 예상된 결과였으나 나머지 한 명의 의견이 눈길을 끌었다. 조윤제 금통위원으로 추정되는 한 위원은 가계부채 증가세가 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성장과 인플레 측면에서도 금리 인상을 서두를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언급했다. 전반적인 톤은 중립적이었으나 가파른 금리인상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비둘기파에 더 가깝다고 평가된다.

이주열 총재를 제외하고도 매파 성향의 금통위원이 4명으로 확인됐다. 금통위 기자회견이나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이 총재가 매파적 발언을 쏟아내온 점도 이달 금리 인상을 높이는 요인이다. 시장은 11월 인상은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이후 금리 정상화 과정은 만만치 않을 수 있다. 금통위 내부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당장 내년 초 추가 인상이 이뤄지더라도 비둘기파 위원 이외에 중립 위원까지 반대 의견을 낼 가능성이 있다. 이주열 총재와 임지원 금통위원의 임기 만료가 각각 내년 3월과 5월에 돌아온다는 점도 금통위 지형에 커다란 변화 요인이다. 내년 3월의 대통령 선거 일정과 이후 인수위원회의 행보도 금통위의 정책 결정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될 수 있다.

한은이 이제 막 기준금리를 한 번 올렸을 뿐이다. 그럼에도 반박 논거를 들고 KDI가 전면에 등장한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금리 인상을 둘러싼 논쟁은 뜨거워질 것이라 예상된다. 이달 금리 인상 이후로는 내년 정책 방향에 대한 논쟁이 금통위는 물론 경제계, 정치권 등에서 더 가열될 것이다. 국고채 금리 등에 반영된 기준금리에 대한 시장 컨센서스는 현재 1.5% 이상이다. 국고채 3년 금리는 최근 2.0%를 돌파했고 좀처럼 그 선을 깨지 못하고 있다. 기준금리 1.5%는 앞으로 25bp씩 세 차례 이상 금리 인상이 이뤄져야 가능한 수준인데, 시장은 이미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를 상당 부분 반영해왔다고 볼 수 있다. 추가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논쟁이 거세질수록 시장은 선반영된 금리를 되돌리려 할 공산이 크다. 아직 수급 균열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 두 달간 이어진 채권시장의 공포는 점차 수그러들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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