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임하람 기자 = 사흘 전인 지난 9일, 서울 외환시장이 발칵 뒤집어졌다. 달러-원 환율 시세가 '이상하다'는 문의가 쏟아졌다.

특정 금융 정보 단말기의 환율 화면과 외환 정보 웹사이트에 달러-원 환율의 역외 호가가 잘못 표시된 탓이었다.

실제로 당시 1,180원대에서 안정적으로 등락하고 있던 환율이 역외 시장에선 1,200원을 웃도는 수준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현물환 시장 개장을 불과 30분 남겨둔 시점이었다.

당장 달러-원 포지션을 잡고 주문을 처리해야 하는 외환 딜러들과 투자를 위해 환전해야 하는 개인 투자자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다행히 개장 직전 해당 사태가 오류로 밝혀지며 시장의 충격은 없었다. 시장에서는 특정 외국계 은행의 싱가포르 지점 시스템 오류로 발생한 일이라는 이야기가 퍼졌다.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지만, 아찔했던 오류의 기억은 외환시장 전반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외환시장이 외환거래 전자화 등 환시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는 현재, 이 같은 오류의 경험은 시장에 더 큰 시사점을 준다.

정부가 외환시장 인프라 개선을 올해 경제 정책 방향 중 하나로 제시한 가운데 다수의 은행은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준비하고 있다. 은행별로 온도 차가 있지만, 수십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하나은행은 이미 일부 API 서비스를 개시하고 있다.

API가 도입될 경우 전자 거래, E-FX 비즈니스가 활성화된다. 고객이 앱을 통해 바로 달러-원 환율 거래를 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알고리즘 트레이딩 방식과 자동 헤지, 선물 연계 거래 등 고도의 외환거래 기법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스팟 시장의 전자 거래 활성화는 자연스럽게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의 전자 거래 허용 이슈로도 연결된다.

문제는 이 같은 외환시장 선진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거래 오류와 사고다.

전자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경우, 디지털화에 따른 시스템, 전산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시장이 자동화할수록, 외환 딜러의 개입이 줄어드는 만큼 시스템적 오류에 대한 대응이 늦어질 수 있는 셈이다.

글로벌 외환 시장에서는 이따금 '플래시 크래쉬(flash crash, 순간적 폭락)' 사태가 터진다. 시장의 변동성이 급작스럽게 커지면서 통화 가치가 순간적으로 급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달러화와 엔화 등 국제 통화의 경우 활성화된 알고리즘 트레이딩, 자동화 거래에 따른 고빈도, 극초단타 매매가 플래시 크래쉬 사태를 증폭하는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원화 시장이 선진화하고, 디지털화가 구현되면 '플래시 크래쉬' 같은 사태가 터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국제 선진 통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선진화 작업에 첫발을 뗀 서울 외환시장도 추진 과정에서 이 같은 사태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시스템 오류가 터지더라도 가격이 빠르게 정상화할 수 있는 조치를 준비하고, 전자 거래의 도입 과정에서 변동성을 줄일 수 있는 장치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사흘 전 아찔했던 오류의 기억은 서울 외환시장에 두고두고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금융시장부 임하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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