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울 채권시장, 두 달여 인고의 시간이었다. 채권 금리는 폭등했고 '숏(매도)장'에 익숙지 않은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역대급 위기라는 하소연을 쏟아냈다. 이달 들어 시장 심리가 다소 안정을 찾았지만, 상흔은 너무나 크게 남았다. 약세장의 끝물이라는 판단에도 쫓기듯 '눈물의 손절'을 해야 했던 참가자들 속내는 시꺼멓게 타들어 간다. 최근 스멀스멀 강세로 돌아서는 시장 분위기마저 야속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지난달 말 국고채 3년물 금리가 2.0% 안팎을 오갈 때 많은 기관이 손절 물량을 쏟아냈다. 채권 현물과 국채선물, 스와프 시장에서까지 그야말로 곡소리가 넘쳐났다. 손절이 손절을 부르는 악순환을 거듭한 끝에 국고 3년 금리는 3년여 만에 2.1%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 기간 주로 손절에 나섰던 기관은 국내증권사 딜링룸으로 전해진다. 일부 외국계 은행 서울지점에서도 손절성 물량이 쏟아졌다. 이들의 상당수는 비교적 손이 빠른 단기투자성 계정이다. 대고객 자산이 아닌 고유 자산을 운용하는 프랍 계정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증권사 딜커(브로커와 딜러의 합성어)의 물량이 일시에 몰리며 시장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들 프랍 계정 대부분은 절대 수익을 추구한다. 강세장일 때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인 반면에 약세장에선 손실이 막대해질 수 있다. 손절 기준을 빡빡하게 가져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손절 기준은 기관별, 딜링룸별로 다양하다. 각 채권 종목이나 국채선물 포지션을 기준으로 하는 곳도 있지만, 북(book) 전체로 한도를 정하기도 한다. 월이나 분기 등 기간별로 손실 한도를 정해 놓은 곳도 있다.

과매도 국면이라 판단되더라도 각자의 기준에 따라 눈물의 손절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1~2주 전 상황이 딱 그렇다. 국고3년 금리가 2.0%를 웃돌던 당시 시장 전문가들 대다수는 금리 고점 수준이라고 봤다. 플레이어들 역시 저가 매수 기회라는 인식을 하는 곳이 많았다. 다만, 기존 포지션을 정리해두지 않은 이상 추가 매수 여력이 많지는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프랍 계정은 기회를 잡기는 커녕 손절 물량을 쏟아내며 손실을 확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절대 수익이 아닌 벤치마크(기준 지표)를 추종하는 기관들은 시장 급변동기에도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자산운용사와 연기금 등이 대표적이다. 대고객 자산 위주인 은행이나 보험사들도 약세장에서 손절 위주의 대응보다는 교체 매매에 더 신경을 쓸 수 있다. 이들은 채권 과매도 국면에선 일단 버티기는 가능한 구조다.

손절한 곳과 버틴 곳의 시장 대응 강도는 강세 전환 국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금리 고점에 손절한 기관은 좀처럼 매수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채권을 판 가격보다 지금이 높은 수준이라 매수의 논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클로징(장부 마감)을 하고 올해 장사를 접는 편이 오히려 속 편한 일이라고 얘기한다.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하려다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시장 등락에 대응하는 차원의 소극적인 딜링이 적어도 연말까지는 이어질 수 있다.

국채선물시장에서 지난 두 달간 약세장을 주도했던 외국인의 최근 대응은 다분히 공격적이라 국내 기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외국인은 9월 이후 지난달까지 3년 국채선물을 22만계약 넘게 순매도했다. 금리 상승기 초입부터 꾸준하게 판 거라 손절 개념보다는 시장 약세를 유도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들은 지난달 말과 이달 초 채권 과매도 국면에선 국채선물을 공격적으로 사들였고, 최근 금리가 일정부분 내려오자 다시 매수 포지션을 정리했다. 외국인의 투기적인 매매 행태라고 깎아내릴 수 있으나 국내 참가자들 입장에선 탄력적 대응이 가능한 그들의 시스템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올해보다 나은 투자 환경과 시스템에서 작게나마 수익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국내 플레이어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국내외 통화정책 방향과 확대 재정에 따른 공급 물량 확대, 어지러운 경제·물가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내년 시장도 짙은 안갯속을 헤치고 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난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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