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번주 우리나라의 재정·통화·금융당국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오는 11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고승범 금융위원장,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확대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연다. 4개월여 만에 함께 모이는 자리다. 최근 글로벌 인플레이션 가속화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조기 통화정책 정상화 가능성,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와 같은 이른바 회색코뿔소에 올바른 대응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본래 '회색코뿔소(Grey Rhino)'라는 용어는 개연성이 높고 파급력이 크지만,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명백한 리스크를 의미한다. 코뿔소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지만, 코뿔소가 달려올 경우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나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해 큰 피해가 도래하는 현상을 뜻한다. 세계정책연구소(World Policy Institute) 대표이사 겸 소장인 미셸 부커가 지난 2013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처음으로 발표한 개념이다.

먼 거리에서도 쉽게 보이기 때문에 회색코뿔소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우리 정책당국도 여러 차례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홍남기 부총리는 이미 지난해 회색코뿔소의 접근 가능성에 우려를 드러냈고 새해 들어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회색코뿔소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상황이라고 경고를 보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취임한 직후부터 금융 부분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가능성에 대비하자고 주문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현상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을 차단해야 하는 연준을 포함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불가피한 통화 긴축 행보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과잉부채와 금융 불안정 문제, 부동산과 주식을 비롯한 각종 자산가격 거품, 중국의 경기둔화 우려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포함한 지정학적 리스크 등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잠자고 있던 회색코뿔소를 자극할 게 뻔하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선진국과 달리 과잉부채의 문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사실상 한 차례의 조정도 꾸준히 증가했고,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도 소위 '영끌'과 '빚투'라는 이름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부분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색코뿔소가 들이닥치면 가계부채와 자산가격 거품은 한국 경제에 커다란 뇌관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부커 소장은 '회색코뿔소가 온다'는 제목의 저서에서 회색코뿔소는 신호가 미약해서가 아니라 일부러 위험신호를 무시하기 때문에 발생하며, 사람들이 리스크보다 장밋빛 전망에 너무 쉽게 시선을 빼앗기는 경향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어느 때보다 국내외 경제 흐름을 잘 읽고 이에 맞는 정교한 정책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중에 엄청나게 풀린 유동성을 일정부분 제자리로 돌려놓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플레이션과 자산가격 급변동 등 현실화한 문제들이 더욱 커지기 전에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선제 대응이 절실하다. 아울러 선거를 앞두고 이뤄지는 각종 퍼주기식 포풀리즘이나 규제완화 등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괜찮겠지라는 막연한 낙관론으로 대응했다가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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