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는 매(Hawk)도, 비둘기(Dove)도 아니다. 매와 비둘기의 중간인 '매둘기'에 가까운 성향을 보인다. 허니문 기간인 취임 전후 이 총재의 발언 등에서 유추한 시장의 일반적 평가다. 대표적인 매둘기로 인식됐던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옐런 전 의장이 매둘기라 평가됐던 데는 그가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 경제지표 의존)'를 자주 언급했던 영향이 크다. 경제 주변 여건의 불확실성이 클 때 옐런은 "통화정책은 데이터 디펜던트"라는 말을 즐겨했다. 데이터의 변화, 즉 경제 여건 변화에 따라서 통화정책 방향도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옐런 전 의장이 데이터를 자주 언급했던 시기는 연준이 출구전략을 꾀하던 때와 맞물린다. 당시 시장은 빠른 속도의 테이퍼링과 정책금리 인상을 우려했고, 옐런은 시장의 과도한 우려를 제어하는 수단으로 데이터 디펜던트라는 단어를 활용했다. 매파와 비둘기파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금리 인상을 하더라도 점진적이고 작은 범위에서 이뤄질 것이란 안도감을 심어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소통 수단이 됐다고 평가된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전 연준 의장)
출처:워싱턴 AP=연합뉴스








이창용 총재도 데이터를 유독 강조하는 편이다. 지난 25일 한은 출입기자단과의 상견례에서 그는 "데이터를 더 봐야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물가가 조금 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앞으로도 통화정책이 정상화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5월과 7월 기준금리를 계속 올릴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고, 데이터를 더 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다고도 했다.

지난 18일 총재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에선 데이터 디펜던트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우크라이나 사태, 중국의 방역조치 강화 등으로 물가의 상방 위험과 성장의 하방 위험이 동시에 증대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물가와 경기 위험을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데이터 디펜던트'하게 정책을 결정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이 총재와 한은의 데이터 디펜던트는 물가 위험에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년여 만에 처음 4%대로 치솟았다. 소비자가 예상하는 향후 1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이달에 3.1%로 집계, 9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다음달 초 확인될 4월 물가지표에서도 위험 신호가 이어진다면 5월 금통위 때는 추가 금리 인상을 열어둬야 하는 수순이다.

5월 금리인상이 현실화한다면 4월에 이은 연속 인상으로 채권시장 등에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다만, 시장이 보는 기준금리 상단 전망이 당장 크게 훼손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데이터를 강조하는 이 총재의 스탠스를 고려했을 때 7월 금통위 이후의 행보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중국의 주요 도시 봉쇄 정책, 미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등으로 경기 둔화 우려가 부각되는 시점이다. 경기 하방 위험이 하반기에 지표(데이터)로 확인될 경우 한은 금통위의 행보는 수세적으로 바뀔 여지가 있는 셈이다.

시장의 최근 기준금리 상단 전망치는 2.0~2.25% 수준으로 평가된다. 채권시장은 이를 선제적으로 반영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앞으로 이 컨센서스가 크게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시장의 안정감은 점차 회복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 총재의 데이터 디펜던트 방향성에 대해선 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 옐런 전 의장의 사례처럼 시장 안정 수단으로서 적절하게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취재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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