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임금 발(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유럽 등과 유사하게 우리나라에서도 부쩍 높아진 임금 인상률이 물가를 자극할 것이란 전망이 곳곳에서 나온다.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물가 상승은 임금의 추가적인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물가가 오르면 임금이 상승하고, 이에 물가는 더 오르는 악순환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분석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시작된 임금 인상 바람은 고물가까지 맞물리며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여의도 증권가의 임금 인플레는 IT 업계를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전해진다. 지난해 대부분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이 역대급의 실적을 올린 결과이긴 하지만 성과에 따른 상여금만 늘어난 게 아니다. 사내 형평성을 고려하다 보니 미들이나 백 오피스 인력에 대한 급여도 늘려야 했다. 여의도 증권가의 임금 인플레가 만연해지면서 인력 이탈 방지를 위한 급여 인상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최근에 만난 한 중소형 자산운용사 대표는 대형사보다 수익을 내기 어려운 환경이었음에도 임금은 비슷한 수준에서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작년 영업수익은 전년 대비 10%가량 늘었는데 올해 인건비 총액은 30% 넘게 올랐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주가 급락과 금리 급등 여파로 영업 환경은 어려워져 수익은 크게 줄어들 판이다. 회사 이익이 줄어들어도 한번 올린 임금은 깎기 어렵다는 점에서 증권가 오너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임금 인플레는 비단 IT와 증권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들 대부분이 물가 상승률과 비례해 급여를 올린다는 점에서 임금발 인플레 우려는 현실화할 공산이 커졌다. 한은에 따르면 미국의 물가와 임금 간 상승률의 공통요소 간 상관계수는 지난해 1~10월 0.70을 기록했다. 이는 2008년 7월에서 2020년 2월까지의 0.48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임금이 오름과 동시에 물가도 상승하는 현상이 더 뚜렷해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임금발 인플레 압력은 전형적인 수요측 요인이다. 지금까지는 에너지가격 상승 등 공급측 요인이 고물가의 주된 배경이었다면 앞으로는 수요측 요인이 본격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임금 상승에는 특히 기대인플레이션(소비자물가 상승 전망 값)의 변화가 영향을 많이 주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이 1%포인트 높아지면 임금도 1% 상승한다는 연구기관의 분석도 있다. 기대인플레를 제어하는 데는 통화정책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에서 한은의 대응 강도는 더 세질 수밖에 없다.



[그래픽] 기대인플레이션율 추이
출처:연합뉴스








실제 한은과 금융통화위원회 내부에선 기대인플레를 낮추는 데 우선순위를 두는 분위기다. 이창용 총재는 인사청문회에서 "미국처럼 물가가 오른 뒤 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리면 취약계층 등에 굉장히 많은 부작용이 있다. 선제적으로 금리 시그널을 줘서 기대심리(기대인플레이션)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4월 금통위 의사록에서도 금통위원들의 기대인플레 안정 의지가 확인된다. 한 금통위원은 "역사적 경험, 이론적 측면 모두 기대인플레 안정이 부정적 물가충격 대응에 필수적이며 통화정책 당국은 이에 대해 분명한 신호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위원은 "지난해 이후 명목임금의 상승세가 빨라지면서 물가와 임금 간의 상관관계가 뚜렷해지는 점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5월 통화정책 회의에서 '빅스텝' 금리인상이 현실화했다. 앞으로 최소 두 차례 이상 빅스텝을 기정사실로 하는 분위기에서 한은의 정책 스탠스도 이에 발을 맞추는 게 불가피해 보인다. 시장의 한은 기준금리 전망 컨센서스는 연 '2.0~2.25%' 수준에서 최근 연 '2.50% 이상'으로 높아진 분위기다. 채권시장은 이를 빠르게 반영해 시장금리는 무섭게 치솟고 있다. 앞으로 관건은 컨센서스 상향에 대한 선반영 여부가 되겠지만, 컨센서스 재조정 국면에서의 혼란기는 한동안 이어질 수 있다. 시장 방향성에 대한 예단보다는 커브 전략 등 대응의 영역이 더 중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취재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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