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 16일 한국은행 총재의 '빅스텝' 발언에 대해 한은 고위관계자가 해명에 나섰다. 흔한 일은 아니다. 총재의 발언이 의도치 않게 전달되면 통상 공보실이 나선다. 공보실이 한은의 공식 입장을 문자 등으로 기자단에 전달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굳이 '고위관계자'의 발언으로 인용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만큼 한은 집행부와 총재 모두 무척이나 다급했던 모양이다. 총재 말 한마디에 금리와 환율시장이 뒤집어졌으니 일단 빠른 진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의도적으로 신뢰감 있는 '고위관계자'를 등장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재정·국채당국인 기획재정부의 입장도 어느 정도 반영됐을 거라 본다. 기재부가 국채 발행량을 줄이고 상환 의지까지 거듭 밝힌 효과 등으로 채권시장이 다소 안정됐는데 이창용 총재의 빅스텝 발언에 다시 패닉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의 조찬 회동 직후에 나온 발언이라 기재부 역시 난감했을 터다. 추 부총리는 전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이창용 총재와 만나서 이야기할 때는 빅스텝 관련 이야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대화하는 추경호-이창용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찬간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2.5.16 [공동취재] saba@yna.co.kr






이 총재의 빅스텝 발언은 한은 측의 해명대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원론적인 입장일 것이라 이해를 한다. 물가 심리 안정을 위한 경각심 차원의 메시지도 일부 담겨 있을 것이다. 신임 총재로서 의욕이 앞선 데 따른 말 실수 쪽에 무게가 실리지만, 이런 돌출 발언이 반복돼서는 곤란하다. 총재의 시그널링은 그 내용 못지않게 타이밍이 중요한 법이다.

시장을 정밀하게 컨트롤하는 중앙은행가로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자주 회자된다. 시장이 믿고 따른다 해서 '마에스트로'라 불리기도 했던 그다. 그린스펀 전 의장이 시장 컨트롤의 대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의외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모호한' 화법에 있다. 알 듯 모를 듯 절묘한 화법으로 연준의 정책 방향을 밝히면서도 시장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내는 데 도가 텄다.

그린스펀의 화법은 정책 효과 극대화를 위한 의도된 기술이었다고 평가된다. 연준 의장의 경제 상황이나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시장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시장에 선반영되면 막상 정책을 내놓았을 때 그 효과는 반감되기 마련이다. 그린스펀이 평소에 극도로 말을 아껴왔던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시장에 시그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더없이 확실하고 분명하게 의사 표시를 했다. 이 타이밍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중앙은행가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한은의 통화정책이 항상 시장의 기대와 일치할 수는 없다. 당국의 의지와 시장 기대치 간의 간극은 생기기 마련인데, 소통을 통해 이 간극을 줄이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통화정책의 효과는 시장 참여자들이 중앙은행을 믿고 따라와 줄 때 제대로 발휘되기 때문이다. 한은이 혹여 빅스텝을 고민하고 있더라도 가이던스를 적절하게 제시할 수단과 타이밍까지도 신중하게 고려돼야 한다. 일주일 뒤면 이 총재 주재의 첫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이후 온라인으로 진행됐던 금통위 기자간담회도 오프라인으로 전환한다. 이 총재의 금통위 데뷔전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일찌감치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취재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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