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혜의 왕 솔로몬은 빠른 자라고 경주에 이기는 것도 아니고, 강한 자라고 전투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며, 지혜로운 자라고 양식을 얻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 이유로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것에 시기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특정한 공공목표를 달성하고 공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하는 경제정책은 오죽할까. 그래서 경제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관련 규제완화나 공공기관 관련 정책을 보면, 지난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한 취지라고 십분 양보하더라도 굳이 지금 시점에서 내놓아야 하는 대책인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는 게 적지 않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서 부동산 대출 규제의 단계적 정상화란 명목으로 생애최초 주택 구매자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80%로 상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출규제 완화안을 내놓았다. 서울에서 5억원짜리 아파트를 처음 산다면 기존에는 LTV 60%를 적용받아 3억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LTV 80%가 적용돼 4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해진다. 총 대출한도도 6억원까지 늘어난다.

가계부채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국내외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마저 치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많은 대출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뜻이다. 금리 상승기 대출이 부담스러운 시점에 서민과 저소득층을 위해 마련한 대책이 정작 이들에게 쓸모없는 조치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재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1세대 1주택자는 물론 다주택자에 대해서도 세 부담을 대폭 덜어주기로 했다. 지금처럼 주택공급이 수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출규제를 풀고 다주택자의 부동산 세금마저 덜어주면 시장은 정부 정책을 부동산가격을 부양하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부동산시장을 왜곡시키고 가계부채의 심각성만 심화시킬 수 있다. 극소수의 다주택자를 위한 세 부담 경감은 윤석열 대통령이 규제혁신을 통해 부당한 지대추구의 폐습을 없애겠다는 국무회의 발언 취지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최근 정부가 본격적으로 메스를 들이대기 시작한 공공기관 개혁도 비슷하다. 물론 공공개혁은 마냥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공공기관 부채도 위험수위를 넘었다. 일부 공기업 부채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공공부채의 상당 부분이 정부가 주도한 국책사업 과정에서 촉발됐다는 점에서, 단지 국가사업을 대행한 공공기관만을 개혁의 대상으로 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금처럼 뚜렷한 방향성 없이 공공기관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세우는 것만으로 제대로 된 개혁에 성공하기 어렵다. 이번 공공개혁이 과거 정권 초기 때마다 되풀이됐던 공공개혁 레파토리를 벗어나려면 중장기적인 비전과 함께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전략이 선행돼야 한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울수록 민간영역 경제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민간투자가 쪼그라들면 공공영역이 그 공백을 보완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시점에 정부가 나서서 공공기관의 팔을 비틀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팔다리를 자르는 자해행위와 같다. 특히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시점에 굳이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인상을 현실화하는 것도 아쉽다.

바야흐로 경제가 어렵다. 금융시장도 높은 변동성을 보이면서 연일 요동치고 있다. 물론 정부가 내세우는 규제혁신도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불확실성이 커진 시기에는 때에 맞는 정책을 통해 기업과 가계, 금융시장이 맞닥트린 어려움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는 게 더 먼저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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