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도자의 비전은 '참된 경제부국의 건설'에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국가 구성원들이 가난으로부터 자유롭고 생존과 행복을 위협하는 그 어떤 두려움과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 개인이 역량을 발휘해 잘 사는 기회를 얻는 나라, 힘을 모아 공동의 정의와 공정을 이룩하는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는 비전이다. 왜 국가가 존재하는가 하는 국가관에 대한 답은 공정 질서 교란으로 불평등한 부를 축적하도록 방임하는 자유의 보장에서 찾을 수 없다.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자유를 보장하고 지켜주는 것이 민주국가의 책무이고 이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역사에서 바라는 국가 지도자라고 할 만하다.

한국은 과연 참된 경제부국을 지향하는 복지국가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지출비율'(Social spending to GDP ratio)로 보면 턱도 없다는 것이 입증된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이 비율은 12.2%로 OECD 평균인 20.0%의 절반을 조금 넘는 매우 미약한 수준이다. 한국보다 아래에 있는 나라는 38개 국가 중 튀르키예(12.0%), 칠레(11.4%), 멕시코(7.5%)뿐이다.

GDP 대비 한국의 정부부채는 2019년 52.65%에서 2020년 58.66%로 상승했는데, 같은 기간 OECD 평균인 80.01%, 94.65%에 비해 매우 양호하다.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 사태로 대다수 국가가 국가지원금을 대규모로 투입하며 정부부채비율이 대폭 상승했는데, OECD 평균치의 상승폭에 비하면 한국의 상승폭은 훨씬 작다. 그만큼 다른 국가들보다 코로나 대응을 위한 사회비용지출이 매우 적었다는 얘기다.

사회복지지출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프랑스(31.0%)다. 다른 주요 유럽국가 중에서 핀란드(29.1%), 벨기에(28.9%), 독일(25.9%), 스웨덴(25.5%), 영국(20.6%) 등이 평균을 웃돌고, 일본도 22.3%로 꽤 높은 편인데 미국은 18.7%로 OECD 평균을 하회한다. 소득 불평등 지수인 P90/P10 배수는 미국의 경우 2020년 6.3으로 가장 나쁜 그룹에 속한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10년간 낙수효과를 외치며 실시한 감세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소득불평등지수는 계속 악화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사회복지에 관해 가장 심각한 저지출 국가 중 하나인데도 왜 주요 언론은 툭하면 '복지 퍼주기'라는 논조와 공격을 일삼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국가의 책무에 대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인가. 한국은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 측면에서 여전히 매우 취약하고, 노인빈곤율은 OECD 최고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자살률은 한국 복지시스템의 취약함과 양극화의 어두운 면을 상기시킨다.

한국의 사회복지지출비율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인 2009년에 8.069%, 2012년 8.329%, 2016년 9.87% 등이었다. 이 기간에는 멕시코와 함께 OECD 국가 중 완전 바닥이었는데, 2017년 10.107%로 처음으로 GDP의 10% 이상을 지출하면서 점차 상승해 2019년 12.2% 수준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선진국인 유럽국가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소위 진보정권이라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 이 비율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2006년에 겨우 6.78%였고, 그 이전에는 더 낮았다.

이런 현실적 배경 속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발표한 첫 세제 개편안은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감세정책이다. 세법이 정부안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세수는 연간 13조원 넘게 감소할 전망이다. 특히, 법인세 최고구간세율 인하(25%→22%), 상속과 증여세 완화, 종합부동산세 다주택 중과 폐지 등을 통한 대기업과 부자의 감세 규모는 7조7천억원으로 서민·중산층의 감세 규모(4조6천억원)에 비해 훨씬 크다. 법인세 인하가 전체 감세에서 차지하는 비중(6조8천억원)이 가장 크다.

감세안을 발표하면서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면 투자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낙수효과'를 여전히 강조한다. 지난번 칼럼 '낙수효과의 허구와 경제 양극화'에서 낙수효과가 이명박 정권의 감세정책 실행기간에 없었다는 것을 입증한 바 있다. 기업들은 2008년부터 최근까지도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기보다는 현금성 자산 축적에 몰두해왔다.

이제부터 정부가 지속해서 추진해야 하는 경제사회정책의 방향은 명백하다.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비율을 20% 수준으로 상향하면서 사회복지재정재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제까지 표방한 경제정책은 진정한 국가책무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좀비 같은 낙수효과를 외치는 것인데, 이는 절대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소득의 양극화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2017년 12월 주택사업등록업자들에 천문학적인 세제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투기 수요를 자극했고 수도권 집값의 폭등을 초래해 부의 양극화는 심각하게 악화했다.

소득 불평등 지수인 P90/P10, 즉 소득상위 10%선에 걸친 값(P90)을 소득 하위 10%선에 걸친 값(P10)으로 나눈 배율 추이로 보면, 한국은 2016년 5.7, 2017년 5.8로 OECD 꼴찌 수준이었다. 이후 배율은 2018년(5.4)과 2019년(5.2), 2020년(4.8)을 지나며 꾸준히 개선됐다. 특히 2020년에는 처음으로 이 배율이 5.0 이하로 하락해 OECD 38개국 중에서 한국보다 수치가 높은 국가들, 즉 소득 불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는 13개국이 됐다.

이 기간에 소득 불평등을 개선한 원동력은 최저임금의 상승에서 찾을 수 있다. 최저임금은 2017년 6천470원에서 지속 인상돼 2020년 8천590원으로 총 32.8% 인상됐다. P90/P10 배수가 2017년 5.8에서 2020년 4.8로 하락하는 추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은 국가의 책무로서는 당연한 것인데, 정책추진에 있어 오류와 패착을 범했다. 최저임금의 부담을 오로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그리고 취약한 중소기업에 전적으로 지운 것이 문제다. 특히, 제일 취약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급격한 속도의 최저임금 상승 압력을 감내할 재무적 여력이 없다는 점을 너무 안이하게 여겨 경제적 약자들끼리의 갈등을 촉발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초기 경제 참모들은 최저임금 상승이 경제 성장을 주도한다고 포장했다. 소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구호를 외쳤는데 침소봉대였다. 소득주도성장이라 칭하기보다는 경제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복지경제정책이며, 이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을 방지해 최소한 잠재성장률 정도는 지탱해 나가자는 정책이었다. 최저임금의 상승은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고 국민의 기본행복권 확보를 위한 차원이지, 이를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한다고 외치는 것은 낙수효과를 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적절하다.

정부가 취할 바람직한 방향은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최저임금의 상승에 대한 부담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전적으로 지우지 않고 15~25% 정도를 보조해주는 것이다. 즉, 고용주의 부담을 경감하는 '매칭최저임금제' 실행이다. 근로자 임금을 매칭해서 보완해주는 글로벌 사례들은 많다. 이러한 '뉴최저임금제'를 통해 최저임금의 상승이 자영업이나 중소상공업 등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현재 최저임금은 너무 취약하다. 2022년 최저임금 9천160원은 연봉 2천297만원 수준으로, 젊은 세대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출산을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소득수준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핵심을 이미 설파했다. 9급 공무원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데 이걸로 어떻게 서울에서 생활하냐고. 이러면서 만약 합당한 최저임금의 상승을 반대하면 황당한 모순이다.

뉴최저임금제를 위한 재정은 얼마나 필요할까. 2023년 최저임금이 1만1천원이 되도록 하는 가정하에 고용주는 80%, 즉 8천800원만을 지급하고 나머지 20%는 국가재정이 지급하는 구조를 실행하면, 고용주가 부담할 최저임금은 2021년 수준(8천720원)으로 경감된다. 최저임금 1만1천원은 주당 40시간 기준으로 월급 229만9천원이며, 연봉으로는 2천758만8천원이다. 국가재정이 투입될 최저임금 연봉지원분은 1인당 551만7천600원으로 산정된다. 최저임금 적용을 받을 대상을 300만~350만명으로 추정할 때, 약 16조5천억~20조원 정도의 국가재정이 필요하다는 추산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보수와 진보 모든 정권에서 중산층은 계속 몰락하며 중산층 비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소득과 부의 양극화는 악화했다. 지난 25년 동안 모든 정권이 역사 앞에서 심각한 과오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말로는 양극화 해소가 절실한 시대적 과제라고 외쳐 왔지만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고담준론과 탁상공론 수준, 당위적 원칙만을 강조해왔다. 이제 한국경제의 암적 존재인 소득 양극화 개선을 위해 구호나 말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을 실행할 때가 왔다. (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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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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