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를 감세해주면 기업들의 투자가 더 활성화되고 그래서 경제성장이 더 양호해지고 결과적으로 일반 국민들의 소득도 향상된다고 하는 소위 '낙수효과'를 주장하는 시각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35년 동안 지속된 경제관료들의 일관된 시각이자 정책 기조였다. 그러나 이러한 낙수효과 주장은 이미 미국 경제계에서도 좀비적인 생각으로 간주되고 있고, 한국 경제에서도 실증적인 검증에서 이미 실패했다고 해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난 경과를 살펴보자. 2008년 시작된 이명박 정부 시절 초반에 법인세 감세의 환경 조성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은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지난 15년간 누적으로 현금을 계속 축적하여, 2020 회계연도 기준 30대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 즉 현금성 자산은 이미 천문학적인 규모인 1천5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즉, 2008년 초부터 대기업 위주의 국가정책을 실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투자보다는 현금 축적에 집중해 왔음이 명백하다. 즉, 낙수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럼 법인세 감세 국면에서 대기업들은 왜 막대한 이익을 가지고 국민소득증대로 전파(spill-over)되도록 하는 경제 선순환의 핵심 고리인 신규기업투자보다 현금축적에 더 몰두하는 행태를 나타내게 되었을까. 감세해주면 투자가 증대되어 낙수효과가 발생한다는 막연한 기대는 기업의 현실 생리를 너무도 모르는 탁상공론적 교과서적인 발상 중의 하나이다. 낙수효과를 맹신하는 인사들의 단순한 생각과 달리, 신규투자 결정에 대하여 기업 내부에서 고민되는 결정적 요인들은 다가오는 미래의 산업 전망, 글로벌 기술 경쟁력과 재무 여력을 포함한 기업 스스로의 역량 수준에 대한 것이다. 실제로 대기업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법인세율 2~3% 차이 여부에 관한 것은 별로 주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법인세 최고구간세율 감세라는 탁상공론이 아니라, 기업 거버넌스 구조 혁신에 있다. 즉, 기업이 스스로 투자를 적극 고려하여 자생적으로 하게 하는 기업지배구조와 기업문화를 확립하도록 해줘야 한다. 한국의 기업지배구조와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상장기업들의 지배구조는 확연히 차이가 나고, 실제로 이런 면이 기업의 신규가치 창출을 위한 선택과 집중에서 근원적인 차이를 유발한다.

미국과 유럽의 상장기업들은 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시기에 기업가치 상승을 위해 적극적으로 신규 투자하거나 주주들에게 배당금 등으로 환원하며 주주 이익 증대에 나서지 않으면, 이사회의 독립적인 사외이사들이 경영진들에게 기업가치와 주주가치의 하락을 경고한다. 경영진이 나태하거나 방만한 경영행태를 지속하면,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진을 교체하는 이사회 의결을 실행하고 필요하면 외부에서 새로운 대표이사를 영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의 이사회가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는 기업 거버넌스 환경에서는, 기업 경영진은 과도하게 현금성 자산을 계속 축적하기보다는 미래이익 창출을 위해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든지, 아니면 배당금으로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분하게 되는 결정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배경은 사내 유보금, 즉 현금성 자산이 자본잉여금으로 과도하게 계속 기업 내부에 축적되면 ROE(자기자본이익률)가 하락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ROE 하락은 기업가치와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데, 독립적인 이사회는 기업과 주주가치 하락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현금을 계속 축적하는 자체가 비용이라는 점을 이사회가 명백하게 인식하고 그런 경영 행태를 방지하거나, 아니면 안이하고 무능한 경영진을 이사회가 축출하는 기업 거버넌스 문화와 풍토가 미국과 유럽 등의 자본시장 체제에는 확립되어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상장기업들과 자본시장에서는 왜 이러한 기업 거버넌스 문화와 시스템이 자리 잡지 않고 있을까. 핵심적인 원인은 한국의 경우 기업이사회의 사외이사들이 독립성을 지니지 못하는 경우가 아직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사회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못한 문화와 시스템하에서, 이사회가 경영진에게 과도한 현금축적을 하지 말고 신규투자나 주주배당금에 이익 배분을 제대로 실행하라는 요구를 경영진에 못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런 낙후된 기업 거버넌스 구조와 행태가 개선되고 혁신되지 않으면, 기업들은 현금성 자산을 사내에 계속 축적하는 안이하고 나태한 행태를 지속할 뿐이고, 기대되는 경제 선순환은 기업 내부 현금축적 성향으로 막혀버릴 것이다.

그럼 이사회의 독립성을 진정으로 확보해주는 기업 거버넌스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과거를 살펴보면 한국이 IMF 금융위기로 추락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지배주주 집단들의 독단적이고 황제적인 경영행태로 대기업들이 도산한 것이고, 이를 반성하는 견지에서 도입된 자본시장 규정이 IMF 시절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다. 그러나 이런 사외이사체제가 기업이사회에 기업의 최종의결기구인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 지난 35년간 실패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독립적 사외이사(Non-Executive Director, NED)들이 이사회 구성에서 과반수로 선출되어서 이사회의 독립성을 진정으로 확보해야 하는데, 선출되는 사외이사들이 거의 모두 다 지배주주 가문의 가까운 지인들이나 전직 관료들과 가까운 이해관계가 있는 변호사들로 채워지면서, 거의 모두 거수기 역할을 하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로 전락한 역사가 지속되어 왔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2012년 말 대선 시기에 김종인 위원장이 이끄는 경제민주화추진단에서 제안한 경제민주화 공약집에는 이러한 감사선임의 독립성을 위한 소위 '3% 룰'뿐만 아니라 이를 넘어서,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매우 강력한 개혁의 조항이 들어가 있었는데, 그것은 진실로 독립적인 사외이사 선임을 위해 소액주주들에게 상법을 개정하여 '사외이사 지명권'을 할당해준다고 하는 공약이었다.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는 기존 순환출자만 허용해주고 나머지 다른 조항들은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경제민주화공약을 마무리하였지만, 결국 2013년 2월 인수위원회를 거치면서 이러한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 공약은 물론 다른 경제민주화공약들마저 조용히 사라지며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정치적으로 들리고 그냥 복지 퍼주기 주장으로 치부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기업의 최고의결기구인 이사회에 진정으로 독립적인 사외이사들을 선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사회 운영을 제왕적으로 지배하고 기업경영을 전횡하고 일감몰아주기 등으로 지배주주나 그의 일가 친족들이 부를 약탈하고 부를 독점적으로 축적하는 폐해를 근본적으로 혁신하여, 기업이 창출하는 부와 자산의 혜택이 경제의 선순환으로 연결되고, 국가의 지속적 성장을 도모한다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근본정신이다.

그 이후에도 이사회가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지배주주 그룹의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2020년 여름에 들어서 상법개정을 통해 주주총회에서 최소한 1명의 감사(감사위원) 선임에는 대주주(지배주주)를 비롯하여, 모든 주주에게 주총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한다고 하는 규정을 기업의 자산 규모에 상관없이 일괄 적용하자는 논의가 일어 한국 경제계가 총체적으로 논쟁에 빠졌다. 이 상법 개정안은 '이사회 전체의 독립성'까지는 확보되지 않더라도, 기업 자산과 자금을 지키는 최후 파수꾼 역할을 하는 독립적인 감사위원이 최소한 1명 정도는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결국 이 상법 개정안은 국회 의결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부 보수언론과 지배주주 이해를 더 옹호하는 경제단체들은 경영권침해를 운운하고, '외국 펀드나 외국회사들로 기업 정보와 기밀이 유출되게 된다'는 주장을 펼치며 반대 목소리를 드높였다. 감사나 감사위원 중 겨우 1명이 독립적으로 경영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경영권침해라는 주장도 어불성설이었지만, 주총에서 선임된 모든 이사와 감사는 자본시장법상 성실·신의 의무조항과 비밀준수조항에 서약하고 이행해야 하는데 기업의 비밀정보를 유출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된다는 강변은 참으로 어이가 없는 수준이다.

미국 상장회사들의 기업 거버넌스 원칙과 규정집에 나타내는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명백하게 적시한 매우 중요한 조항 하나가 사외이사 자격요건에 대한 것인데, 그것은 사외이사들의 독립성을 위해,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되는 인물은 해당 기업과 최소 3년, 통상적으로 5년 동안 '물질적이고 실질적인 관계(material relationship)'를 가진 기록이 있으면 선임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 배경은 쉽게 이해된다. 만약 회계사, 변호사, 정부 관료 등이 해당 기업과 그 어떠한 업무적인 관계가 있어서 이해관계가 발생한 바 있었다면, 해당 추천 후보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제대로 충족시키기 어렵고 이해 상충의 여지가 매우 높게 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사외이사들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미국 상장회사들의 기업 거버넌스 규칙 조항을 신속히 도입·실시하여야 한다. 범죄 행위를 저지르거나 민사 소송에 연루된 지배주주를 변호하던 변호사나 조사하던 검사가 아무런 제약 없이 해당 기업의 사외이사로 초빙되어 선임되고, 이해관계에 맺어져 있는 정부 관료들도 마찬가지로 쉽사리 사외이사로 선출되는 경우가 너무도 만연하다. 이런 행태들을 제약하는 조항이 없이는 한국 자본시장에서 이사회 독립성은 공염불인 뿐이다.

최근에 시끄러운 쌍방울그룹 김성태 전 회장과 해당 기업의 행태는 이러한 문제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쌍방울 그룹엔 여야 정치인, 판검사 출신 사외이사가 수십 명에 달한다고 한다. 쌍방울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화영 전 민주당 의원도 쌍방울 계열사의 사외이사 출신이다. 이규택 전 의원 같은 여권 정치인을 2011년 사외이사로 영입하기도 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다.

허구성이 입증된 '법인세 감소를 통한 낙수효과'에 목매어 기대하기보다는, 윤석열 정부는 기업의 사외이사들이 독립적으로 기업가치의 발전이나 주주가치 향상에 매진하게끔 하는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기업 거버넌스 개선 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성취하고자 하는 경제 선순환을 위해서 올바른 경제정책 방향이라고 필자는 제언한다.

(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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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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