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7월 금융통화위원회 때 제시한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 사전 안내)는 8월에도 대체로 유효했다. 이 총재는 빅스텝(50bp 인상)을 단행한 7월 금통위 간담회에서 "당분간 25bp씩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일(25일) 금통위 간담회에서도 "연말 '2.75~3.0%' 기준금리 전망이 여전히 합리적이며 점진적 인상이라는 포워드 가이던스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당분간 25bp씩 올리는 것이 기조"라고도 했다.

이 총재의 발언 내용만으로는 한달 전과 크게 다른 게 없어 보이지만, 채권시장의 반응은 격렬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일에만 20bp 넘게, 10년물 금리는 16bp 급등했다. 국고 3년과 10년 모두 3.5% 레벨을 훌쩍 넘어섰다.



한은 및 주요국 중앙은행 기준금리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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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패닉의 가장 큰 이유는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커진 데 있다. 이 총재의 포워드 가이던스가 3~4개월짜리 중기적 시각임이 드러나면서 내년 이후의 정책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이 총재는 '당분간'이라는 표현에 대해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3개월 이후는 그 뒤에 생각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불확실성이 커서 내년 금리를 깊게 얘기할 수 없다"면서도 "연말 이후에 금리를 올리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 투자자가 있으면 자기 책임하에 손실을 보든지 이익을 봐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총재가 '물가 우선'의 발언을 거듭한 것도 한달 전과는 달라진 모습으로 해석됐다. 지난 7월 금통위 때는 물가와 경기 수준을 동시에 고려하는 발언에 집중했다면 전일 간담회에선 물가 정점 이후에도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예고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주요국 대비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라고 평가하면서 "물가를 우선적으로 잡는 것이 국민경제를 운영해 나가는 데 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에도 예상보다 물가가 높게 지속되면 인상 기조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냐고 진단했다.



8월 금통위 간담회 진행 중인 이창용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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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기대의 쏠림 현상도 채권 패닉을 부추긴 셈이 됐다. 시장은 당초 내년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기 침체 우려 등에 따른 금리 인하 기대를 스스로 키워왔던 측면이 있다. 지난 8월 초·중순까지의 채권 강세는 물가 정점론과 함께 내년 이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프라이싱하는 과정이었다. 최근 연방준비제도(Fed)의 9월 회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와중에 이창용 총재의 매파적 발언이 가세하며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가 한순간 무너진 게 결정적이었다.

한은 안팎에선 이 총재 특유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화법에 시장이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평가한다. 이 총재는 불확실성이 너무 많아 내년 이후의 정책 방향은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는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석 달짜리 포워드 가이던스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됐지만, 통제 불가능한 대외 이벤트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미 연준의 9월 정례회의와 10월 말 중국 전당대회, 11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지나면서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 여건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예측 자체가 불가한 상황이다. 그동안 세계 경제의 목줄을 쥐고 있는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가격의 변동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총재는 연말께 이런 변수들의 방향성을 확인하고서 내년 통화정책 방향의 큰 줄기를 잡아가겠다는 취지를 밝힌 셈이다. 결국 이 총재가 강조했던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의 연장선상이다.

8월 금통위 이후 시장의 기준금리 컨센서스는 기존 '2.75~3.0%'에서 최소 3.0%, 최대 3.5% 수준까지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컨센서스의 최대치를 반영하더라도 전일에 기록한 3.5% 이상의 국고채 3년물 금리 수준은 절대 낮지 않다. 내년 경제·물가 여건과 통화정책 방향을 둘러싼 변동성 확대는 당분간 불가피해 보이지만, 패닉성 매도는 결코 좋은 선택은 아닐 것이다. (취재본부 금융시장부장)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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