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비가 오지 않을 때 비를 내리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인디언 기우제'라는 게 있다.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에 성공확률이 사실상 100%인 셈이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인디언 기우제를 준비하는 모양새다. 비를 내려달라는 게 아니라 물가를 낮춰달라는 게 목표에서다. 나라마다 형편은 조금씩 다르지만,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계속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제스쳐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물가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일차적인 소임을 달성했다는 평가를 듣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각국의 물가 상승률을 보면 십분 이해가 간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물가안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가장 최근 발표된 주요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보면 러시아 16.7%, 칠레 14.1%, 영국 8.8%, 미국 8.3%, 독일 7.9%, 인도 5.8%, 한국 5.7%, 일본 2.6% 등이다. 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을 봐도 칠레 10.9%, 미국 6.3%, 영국 5.5%, 한국 4.0%, 독일 3.4% 등이다. 대부분 중앙은행이 목표로 설정한 수준을 넘어섰을 뿐 아니라 수년래 보지 못했던 높은 수치다.





최근에는 기준금리 인상이 중앙은행 간 경쟁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이 환율 경로를 통해 자국의 수입물가와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각국 통화당국이 미국과 경제 여건이 자국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마냥 손을 놓고 지켜보긴 어려운 처지다. 지난달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잭슨홀 연설을 필두로 연준이나 한국은행 등 주요국 통화당국자들의 매파 발언이 쏟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렇다 보니 미국 연준이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상단에 대한 전망치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통화정책은 경기와 고용, 물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될 수밖에 없고, 이렇다 보니 결정권자의 고민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가르마를 타주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은 15일 출근길에서 미국 연준의 '울트라 스텝'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세계적으로 경제와 경기가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면서 경기 회복이 우선이냐, 국민의 실질임금 하락을 가져오는 물가 상승을 잡는 것이 우선이냐는 논란이 있지만, 서민의 실질임금 하락을 가져오는 물가를 잡는 게 우선이라는 기조가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경제활동과 무관하게 실질임금을 갈아먹는 인플레이션을 먼저 잡아야 경제가 바로 서고 경제성장에 따른 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물가를 잡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야기될 수 있는 경기둔화나 이자 부담 등도 일정부분 감수하겠다는 한국은행의 스탠스에 윤 대통령이 나서서 힘을 보탠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한 경제관료는 특정한 이슈에 대해 한은이 기획재정부와는 번번이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지만 청와대, 특히 대통령의 뜻은 누구보다 잘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향후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금융통화위원들이 임명권자인 윤 대통령의 의중을 얼마나 잘 반영할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또 투자자들도 조만간 비가 올 걸로 예단하기보다 중앙은행들이 준비하는 인디언 기우제식 대응을 지켜보면서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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