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당국에 맞서지 말라는 건 금융시장의 불문율이다. 당국의 의지가 강해질 땐 더 유념해야 한다. 서울 외환시장의 요새 분위기가 그렇다. 당국이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는데 여기에 맞서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 될 수 있다. 시장의 오랜 경험칙이다.

외환당국이 달라졌다. 올해 초 달러-원 환율 1,200원을 앞두고서 당국이 종종 시장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환율 1,300원 진입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당시 당국이 미세 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을 통해 환율 상승속도 완화 정도에 주력했다면, 최근 1,400원을 앞두고서는 그 결기부터 남다르다. 공식 구두개입과 더불어 실개입 폭탄을 쏟아내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지난 16일의 장 막판 달러 매도 공세는 시장의 당국에 대한 인식을 확 바꾸는 계기가 됐다. 당국의 실개입 물량으로 추정되는 대량의 달러 매도 물량이 장 막판 10여분새 쏟아졌다. 이 시간에만 달러-원은 10원 가까이 추락했다. 개장 초 1,400원에 바짝 붙었던 달러-원은 하락 반전해 5.70원 내린 1,388.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9월16일 달러-원 환율 일중 틱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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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딜러들은 당국이 본격적으로 칼을 빼 들고 시장에 레드라인을 명시한 것이라 평가한다. 이날 위안화도 약세를 보이는 중이었고 주식시장도 뚜렷한 하락세여서 당국의 고강도 개입이 여의치 않은 시점이었다. 당국이 1,400원을 쉽게 내주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됐다.

서울환시에서 1,400원이란 숫자는 상징적이다. 2008년과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이후 이 숫자는 경험한 적이 없다. 환시 경력 20년 이상의 베테랑 딜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당국 입장에선 1,300원대 허용은 달러 초강세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하나, 이후의 '빅 피겨(큰 자릿수)' 진입은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글로벌 달러 강세 국면에서 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인식이 커지면 역외 투기세력의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국의 존재감을 보여줘야 할 때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달러-원 환율과 외환보유액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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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당국의 강력한 시그널이 시장의 포지션에도 변화를 줄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대규모 달러 매도 개입에 본격적으로 나선 당국 앞에서 딜러들도 달러-원 롱 포지션을 잡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달러 강세가 추세라 하더라도 자칫 큰 손실이 날 수 있는 포지션 플레이는 당분간 자제하려는 움직임이 예상된다. 과거 환율 급등락기에 당국이 포지션 조사를 나섰던 사례가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굳이 당국과 맞설 필요가 없는 시점이다.

당국의 후속 대응도 중요하다. 시장 개입이 지속될 것이고, 개입 효과가 크다는 학습 효과를 심어줘야 한다. 시장 참가자들의 개입 효과에 대한 의구심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불확실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당국의 환율 안정에 대한 고강도 의지가 전방위로 표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달러 매수 심리가 위축되고 당국 개입에 편승해 신규로 달러 매도에 나서는 세력도 많아질 수 있다. 당국의 방어선은 시장과 공감을 같이 했을 때 지켜낼 수 있다.

시장 개입 타이밍과 강도, 그리고 개입 방식은 곧 당국의 실력이다. 개입 타이밍과 강도가 시장에 어느 정도 먹히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그 수단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김성욱 국제경제관리관(전 국제금융국장)과 심규진 외화자금과장 등 기재부 국금라인이 기획한 수출입기업 간담회는 절묘한 타이밍에 열리는 좋은 개입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환율 안정을 위한 직접적인 물량 투입 시기에 맞춰 근본적인 수급 안정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까지 마련된 셈이다. 20일 열리는 간담회에서 당국의 어떤 묘수가 나올지 주목된다. (취재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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