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 달러화가 초강세를 계속하는 가운데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역대급 기록들이 쏟아지고 있다. 달러-원 환율 급등이 불안감을 자극하자 주가가 곤두박질하고 채권금리가 치솟는 등 금융시장도 패닉 장세를 전개하고 있다.

영국 정부의 감세안 조치에 파운드화 투매가 확산되면서 파운드화 가치가 달러화에 대해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영국 파운드는 달러당 1.03480파운드까지 폭락했다. 그 영향에 주요국의 통화 6개와 비교한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14.686까지 치솟아 지난 2002년 5월 이후 20년여 만에 최고치를 다시 썼다.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도 달러화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일본 엔화는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달러당 145엔을 넘어섰다. 지난 1998년 이후 24년 만이다. 급기야 일본 외환당국은 가파른 엔화 약세에 대응해 1998년 6월 이후 처음으로 외환시장에 대규모 달러화 매도개입을 단행했다. 중국 위안화도 달러당 7위안을 넘어서며 근래 보지 못했던 약세를 전개하고 있다.





글로벌 외환시장의 역대급 기록과 맞물려 서울외환시장의 달러-원 환율도 심상치 않다. 달러-원 환율은 글로벌 달러 강세 등과 맞물려 이미 1,400원을 훌쩍 넘어섰다. 특히 26일에는 하루에 달러-원 환율이 22.00원이나 치솟았다.

바야흐로 '킹달러' 시대를 맞아 세계적으로 자국 통화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이른바 '역환율전쟁'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이럴 때일수록 원화 환율을 안정시킬 외환정책을 좌우하는 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참가자들의 평가가 썩 좋지만은 않은 듯하다.

최근 외환위기의 우려가 스멀스멀 제기되면서 당국도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과 한국은행 간 통화스와프 체결, 중공업체의 선물환 매도물량 지원대책 발표 등이 대표적이다. 달러-원 환율 상승을 자극하고 외화자금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민간영역의 수급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외환시장의 우려를 불식하고자 내놓은 당국 수장들의 발언이 시장의 쏠림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이들의 평가처럼 대외 부문의 건전성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달러-원 상승이 글로벌 달러 강세에 기인한 결과이며, '우리는 괜찮다'는 추경호 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되풀이되는 발언이 자칫 외환당국이 달러-원 환율 상승을 용인하고 있다는 인식을 낳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다 보니 강달러 국면에서는 당국도 달러-원 상승을 막기 어렵다는 인식이 커지고 급기야 당국을 겁낼 필요가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굳이 위기를 조장할 필요는 없으나 메시지가 미칠 반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시장에서 나오는 이유다. 일부 시장참가자들은 9월 들러 원화 절하율이 다른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 유독 커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9월 들어 영국 파운드화가 미국 달러화에 7.73% 절하되면서 최고 절하율을 기록했으나 원화도 6.55%나 절하됐다. 유로화의 4.37%나 엔화 3.84%나 월등히 큰 폭이다.





달러 강세에도 글로벌 달러 유동성이 양호한 덕분에 외화자금시장이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 건 다행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통화 긴축기조가 지속되고 세계적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지속될 경우 외화자금시장은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스와프시장에서 1년 스와프베이시스(금리스와프-통화스와프) 역전 폭이 120bp 근처까지 벌어지는 등 달러 차입비용도 상승할 기미다. 지난 9월 초까지도 60bp 초중반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한 달이 못 돼서 2배 가까이 확대된 수준이다.





대외적으로도 원화를 둘러싼 여건이 좋지 않다. 원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가 약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우려로 아시아 통화들의 약세도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달러-원 환율 1,500원을 대비해야 한다는 전망이 쏟아지는 가운데 일부에선 아시아 외환위기 가능성도 나온다.

바야흐로 외환당국도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 하나하나, 발언 하나하나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시기다. 우리나라는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눈앞에 두고도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하다 구제금융이라는 치욕을 경험한 바 있다. 앞으로는 비상시국에 걸맞은 대응방안을 통해 위기에 강한 한국, 한국 외환당국의 진면목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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