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뉴욕 금융시장은 잔치 분위기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마침내 긴축적인 통화정책 행보의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기대되면서다. 연준의 매파적 행보가 주춤해질 것으로 기대되면서 내년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도 희석될 조짐을 보였다. 특히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의 견조한 흐름은 일부 종목의 주가에서도 확인됐다.

◇연준 속도조절론에 안도 랠리

연준이 23일(현지시간) 공개한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상당수(a substantial majority of) 참석자들은 조만간(soon) 금리 인상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준은 또 공개된 의사록을 통해 최종금리 수준이 당초 예상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참석자들은 통화정책이 경제와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과 그에 따른 시차 등을 논의했으며, 누적된 긴축이 지출과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논의했다.

해당 소식이 전해지면서 크리스마스 무렵까지 위험자산 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산타 랠리'에 대한 기대도 한껏 고조됐다. 안전 피난처였던 달러화 가치가 큰 폭의 조정을 받았다. 뉴욕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지난 22일부터 이틀 연속 상승하며 지난 9월 13일 이후 두 달여 만에 지수 4,000선에 안착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일봉 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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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시선은 내년 경기 전망에 고정

시장은 이제 내년도 경기 전망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대부분 월가 전문가들이 내년도에 경기 침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학자들도 내년도 경기 침체에 방점을 두고 있다. 연준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린 데 따른 파장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일부 월가 전문가들은 내년도 미국의 경제가 당초 우려와 달리 침체 국면을 피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부분 경제학자가 경기 침체를 전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월가에는 경제학자들이 경기 침체를 걱정한 경우 한 번도 경기가 침체된 적이 없다는 무시할 수 없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경제학자 대부분 내년 경기침체 전망…일부 주가는 정반대 예고

경제학자들의 내년도 경기 전망이 빗나갈 수도 있다는 실마리는 최근 일부 종목의 주가 흐름에서도 감지됐다.

대표적인 경기 민감 종목인 소매업체 베스트 바이(NYS:BBY)의 3분기 실적이 시장의 예상치를 웃돌았기 때문이다. 베스트바이는 최근 조정 주당순이익(EPS)을 1.38달러로 보고했다. 레피니티브가 집계한 시장 예상치인 1.03달러를 웃돌았다. 순매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줄어든 105억9천만 달러로, 시장이 예상한 103억1천만 달러를 웃돌았다. 주가는 이같은 소식에 지난 22일 한때 8% 이상 급등했다.

미국의 의류업체인 아메리칸 이글(NYS:AEO) 주가도 같은 날 한때 15%나 급등했다. 회사가 월가의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한 데다 재고 수준도 줄였다고 밝히면서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의류 브랜드 가운데 하나인 애버크롬비 앤드 피치(NYS:ANF)의 주가도 같은 날 16%나 급등했다. 회사가 월가의 비관적인 전망을 뒤집으며 개선된 실적을 발표하면서다. 미국의 저가형 백화점 업체인 벌링턴 스토어스(NYS:BURL)의 주가도 한때 17%나 오르며 월가의 우려를 일축했다. 벌링턴 경영진은 인플레이션으로 할인형 특가 상품을 찾는 사람들이 매장으로 다시 유입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가계의 재정 건전성은 역대급

이같은 경기 민감 종목의 선전은 이미 경제지표에서도 감지됐다. 지난 16일 발표된 소매판매가 예상치를 웃돌면서다. 10월 소매판매는 계절 조정 기준 전월보다 1.3% 늘어난 6천945억 달러로 집계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들은 10월 소매판매가 1.2% 늘어났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소매판매 지표는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주목해온 지표 중 하나였다. 소비는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가장 큰 성장 동력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 부문은 내년에도 견조한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국의 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튼튼한 재무 상태를 보여서다.

연준 이코노미스트들에 따르면 작년 중반까지 미국 가계의 저축액은 총 1조7천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이들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의 소득과 지출 증가 추세에 따라 저축했을 금액을 초과하는 수준이다. 미국 가계 소득 하위 50% 가구가 보유한 이 같은 초과 저축액은 지난 6월 현재 총 3천500억달러, 가구당 5천500달러에 이른다.

개인들의 순자산 가치는 팬데믹 이전보다 무려 25조달러 더 많아졌다. 특히 파이코 스코어(FICO Score:Fair Isaac Corporation)는 미국 가계의 신용도가 얼마나 개선됐는지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미국 주택 구매자들의 70% 이상은 양호한 신용등급인 파이코스코어 760점 이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해당 스코어를 기록하는 비중이 20%에 불과했다. 파이코 스코어는 금융거래 내용뿐 아니라 세금, 공과금, 취업 여부 등의 광범위한 정보 등을 종합해 개인들의 신용을 평가하기 때문에 금융거래정보가 부족한 소외계층의 신용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집값이 하락하고 증시가 조정을 받는 등 자산 가치가 하락하고 있지만, 가계의 순자산 가치는 아직도 팬데믹 이전보다 25조달러나 더 많은 상태다.

고용시장이 아직 탄탄하다는 점은 덤이다. 실업률은 완전 고용에 가까운 3.7%를 기록하고 있다. 아직도 구인 건수가 구직 건수의 2배에 이르는 점도 고용시장이 당분간 견조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는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케인스의 "예상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명언 새삼 주목

가계를 제외한 경제의 다른 주체인 기업과 지방정부도 의외로 견실하다.

기업들은 2020∼2021년 초저금리 상황에서 낮은 차입 비용으로 장기간에 걸쳐 자금을 확보해 두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투기등급 회사채(정크본드) 중 앞으로 1년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분량은 3%뿐이다. 2025년 이전에 만기가 되는 분량도 8%에 불과하다.

주 정부와 지방 정부도 아직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현대 경제학 이론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존 매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이미 이런 상황을 꿰뚫고 있었나 보다. 그는 예상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일은 항상 예기치 못한 때 일어난다(The expected never happens. It is the unexpected always)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경제학자 대부분이 예상하는 경기침체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을 듯 하다.(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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