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재계 문화는 폐쇄적이다. 투명 경영을 강조하지만, 안타깝게도 반투명도 안되는 곳이 많아 보인다. 오너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재계가 줄곧 표방해온 이사회 중심 경영도 아직 갈 길이 멀다. 두 달여간 재계와 기업을 담당하는 데스크를 맡으면서 느낀 짧은 소회다.

지난 2일 경제계 신년인사회가 열린 서울시 강남구 코엑스 그랜드볼룸. 주요 그룹 총수들이 총출동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이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과 구현모 KT 사장 등 오너가 아닌 총수는 거의 자리하지 못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초대를 받은 중견·중소기업 인사들은 다수 있었지만, 출입 동선 자체가 총수들과 달랐다고 한다. 행사장 안에서도 재계와 중견·중소기업인의 위치는 확연하게 구분됐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의 공동 개최 의미가 무엇인지 자문해 볼 일이다. 참석자들 간 서로 인사와 공감이 없는 이상한 인사회다.

경제계 신년인사회는 취재 통로도 막혀 있다. 올해는 대통령이 참석하면서 보안이 더 세진 이유도 있지만, 과거에도 기자들은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행사장 입구에서 총수의 입만 바라볼 뿐이다. 올해는 그나마도 총수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닫으면서 현장에서 대기하던 수십, 수백의 기자들은 자료만 받아쓰는 신세가 됐다.


경제계 신년인사회
[출처:연합뉴스 자료사진]




매년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금융권 신년인사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범금융 신년인사회. 금융지주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경영진들이 대거 몰렸다.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과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의 참석은 거의 디폴트다. 여기는 그야말로 열린 공간이다. 정부 당국자와 금융지주 회장, 금융사 CEO와 임원들은 행사장 안에서 자유롭게 다니며 인사하고 환담을 한다. 언론 취재에도 별다른 제약이 없다. 당국과 금융권 고위인사의 올해 계획, 인사이트 등을 다양하게 청취할 기회라 인사회 현장은 매번 북적거리면서도 활기가 넘친다.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새해 인사하는 추경호 부총리
[출처:연합뉴스 자료사진]




재계 행사의 분위기가 금융계와 크게 다른 데는 무엇보다 오너 중심의 폐쇄적 경영 문화가 꼽힌다. 많은 그룹사가 전문 경영인을 내세우고, 이사회 중심의 경영 철학을 강조하면서도 여전히 현실은 오너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룹 계열을 모두 관장하면서 임기도 없는 오너 총수들의 권한은 막강할 수밖에 없다. 일부 총수는 현재 대표이사가 아니면서도 여전히 사실상 의사결정의 최고봉에 있다고 전해진다. 총수에 대한 과도한 의전이 외부 소통을 막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금융계는 과거 미래에셋금융그룹 정도가 오너 색채가 강했다면, 지금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오너 금융사라 해도 스타 전문 경영인이 더 부각되는 사례가 많다. 재계와 가장 차별화되는 점이다. 전문 경영인의 선임이나 연임 결정이 오너의 입김에 좌우되는지, 이사회 권한이 주로 작용하는지 등도 다른 점으로 평가된다. 감독기구의 존재 여부도 재계와 금융계의 경영문화 차이를 가르는 요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존재는 그동안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의 투명하고 열린 경영에 기여한 측면이 크다고 본다. 금융당국의 상시 감독이나 검사 기능이 금융 규제 강화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투명한 경영 문화에는 충분히 일조했다는 얘기다.

기업은 딱히 감독기구라고 할 만한 곳이 없다. 법 위반을 하거나 담합 등의 불공정 거래가 있을 시에는 검찰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게 되지만, 상시적인 감시의 기능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기업은 오너를 비롯한 권력자의 전횡을 견제하기가 힘든 구조여서 자생적인 경영 문화 개선이 요구된다.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이사회의 권한과 역량을 더 확대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그룹 총수 역시 의전의 그림자에 숨어있지 말고 더 많은 소통을 하겠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투명 경영이 대세가 되고 있는 지금, 재벌가 은둔의 경영은 없어져야 할 잔재다.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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