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둔화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여전히 노심초사하고 있다. 미국의 국채시장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인플레이션을 진압하기 위한 긴축적 통화정책에 대한 연준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서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청사
연합뉴스 제공



◇연준 '부적절한' 표현까지 동원하며 완화 기대 경계

연준의 우려는 일부 금융시장 지표에도 반영되고 있다. 시장이 올해 말 기대하고 있는 기준금리 수준이 연 4.67%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연준의 점도표 등은 올해 말 연준의 기준금리가 당초 4.6%에서 5.1% 수준으로 상향조정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시장은 올해 상반기에 기준금리 인상의 정점을 찍은 뒤 연준이 하반기부터는 불가피하게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베팅을 강화했다.

기준금리 최종수준에 대한 컨센서스도 12개의 월가 대형 투자은행은 5.00~5.25%로 전망했고, 2개만 5.25~5.50%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연준 고위 관계자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준은 향후 정책기조가 충분히 제약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점진적인 금리 인상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연준이 지난 4일 공개한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부적절한(unwarranted) 완화'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통화정책 변경을 의미하는 '피벗(pivot)'에 대한 섣부른 기대를 사전차단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준은 최종 정책금리 수준을 탐색해가는 과정에서 상?하방 리스크에 대해 균형적인 스탠스를 유지할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매파적 행보 강화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매파적인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좀처럼 파월 의장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기미가 없다.

파월 의장은 지난해 12월 FOMC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통화 정책기조가 아직 충분히 제약적이지 않아 지속적인 금리 인상이 적절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파월 의장은 향후 경제 및 금융 상황에 따라 최종 정책금리 수준을 다시 올려야 할 수도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비둘기파와 매파를 가리지 않고 연준 고위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인플레이션이 지속해서 하락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최종 정책 금리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책금리 인상 기조를 멈추고 상당 기간 제약적인 금융 여건을 이어가는 '스톱앤드홀드(stop-and-hold)' 전략을 구사하겠다고 천명한 셈이다.


◇시장은 '스톱앤고(stop-and-go)' 베팅

하지만 시장은 지난 1970년대의 '가다 서다 하는(stop-and-go·스톱앤고)' 형태의 통화정책 행보를 답습할 것이라는 베팅을 강화하고 있다. '스톱앤고' 정책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다시 성장률을 떠받치기 위해 물러서는 것을 반복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지난 1960년대 말 당시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 연준 의장은 경기침체 공포에 금리 인상을 중단했다. 아서 번즈 의장 체제에서는 더 악화했다. 아서 번즈 의장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는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렸으나 급격한 침체가 나오면서 이듬해 금리를 인하했다. 인플레이션이 주춤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고용시장이 빠른 속도로 위축되면서 연준의 긴축적인 통화정책 행보에 걸림돌이 됐다.

결국 하이퍼 인플레이션 상황은 폴 폴커 의장 체제가 들어설 때까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볼커 의장은 1979년 한꺼번에 기준금리를 400bp나 올릴 정도로 무자비한 통화정책을 거듭한 끝에 인플레이션을 겨우 잡았다. 이 과정에서 기준금리는 무려 21.5% 수준까지 올랐고 미국의 실업률도 10% 수준으로 치솟았다(본보 2022/07/28 일자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에 시장은 스톱앤고에 베팅 기사 참조).

◇'이번은 다르다'와 시장의 인지 부조화

미국채 10년물 수익률도 시장의 이런 기대를 일부 반영하고 있다.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지난해 10월 21일 연 4.3247%로 고점을 찍은 뒤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한때 전날 마감가 대비 8bp 하락한 3.53%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장은 묵은 지표를 바탕으로 인플레이션을 평가한다는 이유 등으로 연준에 불신을 드러냈다.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둔화하는 반면 경기가 더 큰 폭으로 악화하고 있다는 점을 연준이 간과하고 있다는 게 일부 시장참가자들의 주장이다.

사우트 스트래터지의 해리 카티카는 "월가는 연준이 내놓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라며 "트레이더들에 따르면 경제는 빠르게 둔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티카는 "지표가 공개될 때까지 최대 한 달이 걸리지만, 트레이더들은 증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라며 "트레이더들이 2년물 국채선물을 사들이면서 이틀간 국채선물은 랠리를 보였다. 트레이더들은 경기 둔화로 금리가 하락할 것에 베팅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연준이 단기금리를 더 높이 가져갈수록 경기둔화 깊이는 깊어지고 기간은 길어질 것"이라며 "시장은 연준이 큰 실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당 베팅이 전형적인 인지부조화에 해당하는지 선취매인지 여부는 12일 발표되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어렴풋하게나마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지부조화에 따른 무리한 베팅이라면 시장은 또 한 번 요동칠 수 있다. 과도한 쏠림은 반드시 풀리고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1999년 닷컴버블과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건진 유일한 교훈이다.

시중금리만 보면 글로벌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이번은 다르다(this time it's different)'는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번은 다르다'는 말은 전설의 투자자 존 템플턴(1912~2008·사진)이 '영어에서 가장 값비싼 말'이라고 규정하면서 유명해진 경구다. 템플턴은 주가 폭등에 이은 자산가격 조정이나 경기둔화 등을 두고 사람들은 늘 '이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 생각은 완전히 틀릴 뿐 아니라 언제나 값비싼 대가까지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채권시장 등 글로벌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섣부른 피벗 기대에 동조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도록 신중한 행보를 고려해야 할 듯하다.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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