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SK그룹의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는 재계 M&A 역사에서 가장 잘한 빅딜 중 하나로 꼽힌다. SK그룹 입장에선 에너지·화학·통신 중심의 사업구조에 반도체라는 새로운 성장축을 확보한 계기가 됐다. 하이닉스는 SK의 자금을 수혈받아 환골탈태했다. 지난 10년간 눈부신 실적 성장을 일궈내며 세계 2위의 메모리 반도체 회사가 됐다. SK그룹의 주력 계열사이자 최대 캐시카우(수익창출원)로 자리잡기도 했다.

SK에 인수되기 전 하이닉스는 10년 넘게 주인 없는 회사였다. 재무 상황이 열악해 투자를 위한 자금조달도 여의치 않았다. 이른바 빅딜 정책으로 1999년 10월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인수하면서 탄생한 하이닉스는 D램값 폭락으로 유동성 위기를 맞는다. 2001년 8월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뒤 채권단의 공동관리 신세가 됐다. 이후 채권단은 수차례 매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당시 국내 2위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라는 잠재력에도 부실한 재무구조가 발목을 잡았다.

위험요인이 적잖은 하이닉스 인수 결단을 내린 건 최태원 회장이었다. 2012년 2월 SK가 투입한 하이닉스 인수 대금은 3조4천여억원. 인수로 끝나는 게 아니다. 반도체 산업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이라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승자의 저주가 될 것이란 그룹 안팎의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최 회장은 하이닉스를 세계 반도체 초우량기업으로 키우겠다며 인수를 밀어붙였다.

SK하이닉스로 이름을 바꾼 초기, 우려가 현실이 되는 듯했다.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 첫해 시설 투자로만 4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다. 실적은 부진했다. SK하이닉스는 2012년 2천273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이후 그룹의 적극적인 투자가 더해지며 운도 따랐다. 반도체 경기가 바닥을 찍고 돌아서자 놀라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3조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더니 이후 퀀텀 점프를 했다. 2018년 영업이익은 20조원대로 급증했다. 매출 역시 2012년 10조원 수준에서 2018년 40조원대로 치솟았다. 기존의 그룹 캐시카우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의 이익 수준을 크게 넘어서며 그룹 주력사로 우뚝 섰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영업이익이 각각 2조원대, 5조원대에 그치며 다소 부진했다. 2021년 다시 12조원대의 대규모 이익을 내는 호황기를 누렸지만, 지난해 하반기 큰 위기가 찾아왔다. 10년 만에 분기 적자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출처:연합뉴스 자료사진]



반도체가 사이클에 매우 민감한 사업이라 해도 적자 규모가 심상찮다. SK하이닉스는 작년 4분기에만 1조7천여억 원의 대규모 영업손실을 냈다. 시장 예상치를 훌쩍 넘는 규모다. 게다가 1조원대 분기 영업적자는 하이닉스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작년 전체로는 7조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4분기 결과가 워낙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SK하이닉스는 올해 투자 규모만 작년 대비 50% 이상 줄일 것이라고 했다. 감산 없이는 버티기 힘든 국면이다.

올해 전망, 특히 상반기는 더 안 좋다. 작년 4분기는 위기의 시작일 뿐 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연합인포맥스 컨센서스(8031 화면)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손실이 2조5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2분기에도 비슷한 수준의 적자가 예상된다. 하반기 다소 개선될 것이란 관측에도, 연간 영업적자는 7조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7조원 적자는 다른 캐시카우 계열의 이익 전망치를 크게 넘어서는 수준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각각 3조7천억원, 1조7천억원이다. 양 핵심계열의 이익을 합쳐도 SK하이닉스의 적자를 메우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하이닉스의 실적 악화가 길어지면 그룹이 지원하기 쉽지 않은 구조가 된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 2023년 영업이익 컨센서스
[출처:연합인포맥스 컨센서스 종합]



하이닉스의 작년 3분기까지 현금성자산은 5조3천억원 수준. 2019년 이후 꾸준하게 늘어나기는 했지만, 연간 투자액을 고려하면 충분한 수준이라 보기 어렵다. 4분기 대규모 적자로 현금흐름은 한층 악화했을 것이다. 투자를 위한 외부 조달의 숙제는 물론 2년 이내 약 2조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 스케줄에도 대응해야 한다. 그나마 하반기 메모리 업황 개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룹 최대 캐시카우로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chhan@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4시 26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