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사업 경쟁력 강화, 김홍국 회장 '한국판 카길' 꿈 바짝

(서울=연합인포맥스) 유수진 기자 = 국내 1위 벌크선사 팬오션이 벌크선 1척을 싱가포르 소재 곡물 자회사에 현물출자 하는 등 곡물사업 경쟁력 강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다음 달 곡물 트레이딩 관련 전문가를 등기임원으로 선임할 계획이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있다. '병아리 10마리 신화'를 이룬 김 회장은 팬오션 인수를 계기로 자신의 오랜 꿈인 '한국판 카길(Cargill)'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2015년 하림그룹 편입 후 본격화, 매출 성장세 '지속'

13일 업계에 따르면 팬오션은 지난해 곡물사업에서 7천20억원을 벌어들였다. 2015년 곡물 트레이딩 사업에 진출한 이래 처음으로 연매출 7천억원을 넘겼다.

팬오션의 곡물사업은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추세다. 2019년 잠시 주춤했던 것을 제외하고 매년 우상향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매출이 2천억원 이상 증가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출처: 팬오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팬오션에 곡물 트레이딩은 단순 사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김홍국 회장의 '꿈'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팬오션이 하림그룹 품에 안기게 된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김 회장은 2015년 법정관리 중이던 팬오션 인수전에 뛰어들며 '한국판 카길'이 되겠다는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카길은 농업과 식품업, 제조업 등을 하고 있는 글로벌 1위 곡물업체다.

그는 팬오션을 인수하면 축산업이 주축인 하림그룹의 안정적인 운송망 확보와 비용 절감에 보탬이 될 걸로 판단했다.

국가 차원의 식량 안보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될 걸로 봤다. 국내 곡물 수요의 95% 이상(쌀 제외)을 수입하지만 국적 트레이더가 없어 해외 트레이더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수 직후 "팬오션 인수는 10여 년 전부터 곡물사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팬오션 안에 곡물사업부를 두고 하림그룹이 쓰는 곡물을 시작으로 국내 곡물 수요자들에게 공급하고, 나아가 동북아시아에 공급하는 쪽으로 확대하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팬오션은 전담 조직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곡물사업에 뛰어들었다. 과거 곡물 수송 경험을 바탕으로 1년 만에 120만톤의 옥수수와 대두, 팜박을 판매하며 시장에 연착륙했다. 최근엔 국내 옥수수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2022년 기준 매출의 11%가 곡물사업에서 나오는 등 기여도가 높아졌다. 2020년엔 매출 비중 15%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5년 해운업 매출 비중이 97%에 육박(당시 곡물 1%)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선박 출자·전문가 영입…경쟁력 강화 총력

팬오션은 곡물사업 강화를 위해 최근 벌크선 1척을 싱가포르 소재 100% 자회사 팬오션트레이딩앤로지스틱스(Pan Ocean Trading & Logistics Pte. Ltd.)에 양도하기로 결정했다.

현물출자(260억원) 방식으로 팬오션이 자회사가 발행하는 신주 전량을 인수하는 형태다.

[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팬오션트레이딩앤로지스틱스는 작년 3월 팬오션 미국법인으로부터 곡물트레이딩 사업을 양수, 싱가포르 현지 곡물회사로 정식 출범했다. 사명도 팬오션 싱가포르 벌크 캐리어(Pan Ocean Singapore Bulk Carrier Pte. Ltd.)에서 바꿨다.

곡물 트레이딩 전문가도 영입한다.

팬오션은 다음달 29일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김태환 전 농협경제지주 축산경제 대표이사를 사외이사에 선임할 계획이다.

김 후보는 평생을 축산업에 몸담은 인물이다. 1983년 축협중앙회로 입사해 주요 보직을 거친 뒤 2016년 축산경제 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이후 재선과 3선에 성공하며 총 38여년간 농협에 재직했다.

팬오션이 농업 관련 전문가를 등기이사로 선임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2021년 3월에도 정학수 동아시아농업협회 회장을 사외이사에 선임한 바 있다. 농촌개발국장과 농업정책국장,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 등을 지낸 인물이다.

통상 법률·재무 전문가를 중심으로 사외이사진을 구성했던 것과 달라 눈길을 끌었다. 당시 곡물사업에 힘을 싣기 위한 차원의 조치로 풀이됐다.

팬오션 관계자는 "곡물 트레이딩 사업을 할 때 농협의 관련 협의체를 통해 물건을 들여온다"며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곡물과 사료, 트레이딩 등 관련 전문성을 고려해 김 후보를 이사 후보로 추천한 것"이라고 말했다.

sjyoo@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09시 06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