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일가 첫 이의 제기, 'LG=인화' 이미지에 큰 타격

(서울=연합인포맥스) 유수진 기자 = '인화(人和)의 상징' LG그룹에서 최근 구본무 선대회장이 남긴 상속재산 분할을 둘러싸고 벌어진 오너일가간 분쟁은 재계 다른 기업의 경영권 다툼과는 차이가 있다.

4년여 전 가족 간 합의에 따라 교통정리가 끝난 재산분할을 다시 들여다보자며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나머지 상속인들이 소를 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LG그룹이 75년간 이어온 '장자 승계' 전통의 이면에 존재하던 균열이 외부에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세 모녀 "유언장 유무 인지 못한 채 합의" 주장

13일 재계 등에 따르면 이번에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낸 구 회장의 어머니 김영식씨와 여동생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씨는 구 선대회장의 유언이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으니 상속재산을 법정 비율에 따라 다시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과거 재산분할이 '가풍에 따른 가족 간 원만한 합의'에 의해 이뤄졌다는 LG그룹 측 설명과 엇갈리는 대목이다. 세 사람이 진정한 의사가 아니라 유언에 기반한 재산분할인 줄 알고 합의를 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4년여 전 구 선대회장의 보유 재산은 통상적인 법정 상속 비율(배우자 1.5대 자녀 1)대로 분할상속 되지 않았다.

[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그룹 후계자이자 장남인 구 회장 몫이 확연히 많았다. LG그룹 지주사인 ㈜LG 지분 8.8% 등 경영권 관련 재산(1조5천억 원)을 대부분 물려받았다. 나머지 세 사람 몫은 ㈜LG 지분 일부와 금융투자상품, 부동산, 미술품 등 약 5천억 원가량이 전부였다.

앞으로 소송 진행 과정 등과 별개로 LG그룹은 1947년 출범 후 75년간 쌓아온 대내외적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오너 4세' 시대에 오기까지 가족 간 경영권·재산 분쟁이 전무했다는 건 LG그룹의 큰 자랑거리였다.

특히 이번 건을 통해 LG그룹이 일관되게 지켜온 장자 승계 원칙에 모든 구성원이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상 이번 분쟁의 '시작점'이나 다름없다.


◇75년 만에 첫 잡음 유출, '변화의 씨앗'되나

LG그룹은 그간 장남이 회사를 물려받고 다른 가족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계열 분리를 하는 전통을 고수해왔다.

1969년 구인회 창업회장 별세 후 6남4녀 중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회사를 물려받았고, 구 명예회장은 1995년 맏아들 구본무 선대회장에게 그룹을 넘겼다. 구광모 회장 역시 구 선대회장의 장남이다.

사실상 오너일가 모두에게 경영권을 물려받을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미 후계자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서로 경쟁을 통해 경영 능력을 겨루지도 않는다.

이에 따라 장자가 아닌 나머지 일원들은 LS그룹과 GS그룹(동업), 아워홈, 희성그룹, LIG손해보험, LB인베스트먼트, LX그룹 등으로 계열 분리해 독립경영을 하고 있다. 가문의 전통을 계승해 LG그룹 후계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길을 터주기 위한 차원이다.



그동안은 이와 관련해 외부로 표출되는 잡음이 일절 없었다. 가족 구성원들이 가풍을 존중해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으로 풀이됐다.

구광모 회장 역시 구 선대회장의 장남으로서 가족 간 협의·추대 절차를 거쳐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작은 아버지인 구본준 당시 부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났다 LX그룹으로 계열 분리하는 등 이전 세대와 비슷한 모습이 재현됐다.

다만 이번 분쟁엔 구 회장이 다소 예외적 케이스란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의 경우 구 선대회장의 친자가 아니다. 1978년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2004년 큰 아버지(구 선대회장)의 양자로 입적됐다.

구 선대회장이 1994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외아들을 사고로 잃어 슬하에 딸만 둘 있었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물려줄 아들이 없어 조카를 양자로 들였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구 선대회장의 아내와 친딸들 입장에서 보면 '장자 승계' 원칙에 의해 LG그룹 경영권은 물론 상속재산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셈이다. 이번에 처음 이에 대한 이의가 외부로 표출된 만큼 향후 LG그룹 가풍에 일부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범LG가로 시야를 넓혀보면 여전히 장자 승계 원칙을 중시하는 곳이 대다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없지 않다.

대표적인 곳이 아워홈이다. 구자학 창업주의 막내딸 구지은 대표이사(부회장)가 오빠인 구본성 전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해 회사를 이끌고 있다.

구 대표는 네 남매 중 유일하게 경영수업을 받았으나 장남인 구 전 부회장이 2016년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하며 한때 자회사로 밀려났었다. 그러나 구 전 부회장이 사법적 이슈에 휘말리며 아워홈 이사회가 그를 대표이사에서 해임하고 구지은 부회장을 선임했다. 당시 범LG가의 무조건적인 장자 승계가 깨진 사례로 크게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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