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미 기자 =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위기 경보를 울린 지 단 44시간에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파가 우려된다.

지난 10일(미국시간)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SVB를 폐쇄하면서 2008년 워싱턴 뮤추얼 이후 예금 자산 기준으로는 역대 2위 규모의 파산이 발생했다. 은행 웹사이트에 따르면 SVB는 미국 내 벤처캐피털(VC)이 지원하는 IT와 생명과학 기업을 거의 절반 가까이, VC는 약 2천500곳 넘는 곳에 서비스하고 있다.

SVB는 실리콘밸리의 IT 기업, VC 등 팬데믹 때 호황을 보였던 업계를 주 고객으로 삼았다. 그러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전례 없는 공격적인 금리 인상과 그로 인한 실리콘밸리의 불황은 SVB 파산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

그동안 월가 전문가들은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인해 무언가가 "부러질 것"이라는 경고를 끊임없이 내놨고, SVB가 전격 파산하면서 금리 인상의 충격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두려움이 확산하고 있다.
 

 


◇ 제2의 SVB는…모기지 편중·대규모 잠재 손실 증권 주목

시장에서는 제2의 SVB 찾기에 분주하다. SVB처럼 특정 산업이나 투자에 집중하고 있거나, 채권 포트폴리오 매각으로 막대한 손실을 본 점을 고려해 보유 증권의 '미실현 손실'이 큰 은행이 위험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부동산 대출에 많이 노출된 중소 규모 지역은행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지난 9일과 10일 이틀간 주가가 폭락한 팩웨스트 뱅코프는 대출의 3분의 2가 부동산과 연관돼 있다. 같은 기간 29% 폭락한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최근 몇 년간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사업에 집중하면서 대출을 급속도로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 기업의 주가가 폭락한 것은 부동산과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이 연준의 금리 인상 여파로 향후 몇 달간 부진할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판단 때문으로 읽힌다.

다만 일부 부실 은행이 정리되더라도 2008년처럼 시스템의 위기로 전면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SVB처럼 특정 분야에 지나치게 쏠린 은행이 많지 않고, 초과 현금을 대부분 미 국채에만 투자해 보유한 은행이 없기 때문이라고 CNBC는 지적했다.

마켓워치는 SVB의 매도가능자산(AFS)에서 대규모 손실이 난 점을 들어 은행들이 보유한 증권의 미실현 손실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기타포괄손익누계액(AOCI)이 마이너스를 나타낸 은행과 AOCI를 총자기자본(TEC)에서 AOCI를 뺀(AOCI/TEC-AOCI) 비율의 마이너스 폭이 가장 큰 은행 20곳을 선정했다.

AOCI의 마이너스 폭이 가장 큰 은행은 키코프(-62억9천500만달러), 핍서드방코프(-51억1천만달러), 앨라이파이낸셜(-40억5천900만달러), 코메리카(-37억4천200만달러), 지온스 방코포레이션(-31억1천200만달러) 순이었다. SVB의 경우 210억달러의 증권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상태였으며 이를 매각해 18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AOCI/TEC-AOCI 비율로 보면 코메리카가 -41.9%로 가장 높았으며, 지온스 방코포레이션은 -38.9%, 포퓰라는 -38.2%, 키코프는 -31.9% 순이었다. 앨라이는 -24.0%, 핍서드는 -22.8%였다.

 

 

 

 

폴 크루그먼 트윗

 

 


◇ "제2의 리먼 모멘트는 아냐"…당국 개입 필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나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등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SVB 파산이 "제2의 리먼 모멘트"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시중금리의 가파른 상승이 SVB 파산의 원인을 제공했지만, 개별 은행의 특이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미 금융당국이나 정부가 SVB 예금을 전액 돌려주고 파산 절차를 원만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실제로 이날 연준은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SVB 붕괴에 따른 긴급 조치를 발표하고 모든 예금자의 예금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금주들은 13일 월요일부터 모든 자금에 접근할 수 있으며 "은행들이 모든 예금자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적격예금기관에 추가 자금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루그먼은 트위터를 통해 SVB의 파산이 "은행시스템 전체에 대한 전조가 아니며 또한 또 다른 리먼 모멘트가 아닌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SVB가 새로운 리먼브러더스라기보다는 "(IT 기업들과) 한담을 나누고 바이브를 즐기는 은행(Schmoozing and Vibes Bank)"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낫다면서 이 은행이 "실리콘밸리 특히, 벤처캐피털과 관계 구축에 이례적으로 뛰어났다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좋은 관계를 구축하면서 SVB의 예금이 급속하게 증가했으며 최근 몇 년 사이에 IT 벤처캐피털 생태계의 핵심적인 부분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SVB가 막대한 현금을 쌓아놓고, 당시 투자 수익률이 높았던 장기 증권에 이를 넣어뒀지만 채권 수익률이 높아지면서 이익이 줄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것이 SVB 자체에는 큰 문제를 일으켰지만, 다른 은행에 전이될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다만 VC 생태계 전반에 미칠 영향은 우려된다고 그는 말했다.

크루그먼은 그러나 하루 뒤 트위터에서는 "연준이 모든 비보증 예금은 아닐지라도 일부를 보증해야 할 정도로 충분한 시스템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위험 경보의 수위를 높였다.

서머스는 SVB 고객이 예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서 전반적인 금융 시스템에 시스템 위험은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UBS는 은행간 대출 시장에 불안 조짐이 없다고 마켓워치를 통해 지적했다. 다른 은행들의 예금원이 훨씬 다양하기 때문에 '전이' 위험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CE)의 폴 애시워스 이코노미스트는 시중은행의 만기보유증권(HTM) 손실이 시스템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고객 노트를 통해 지난 11일(미국시간) 진단했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예금 보증이 대부분 은행의 뱅크런을 막을 것이며 현금 조달이 필요한 은행들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레포와 재할인 창구, 혹은 연방주택대출은행을 통해 자금조달해 손실 확정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은행은 또 스와프 시장을 통해 금리를 헤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애시워스는 그럼에도 SVB의 문제는 "중앙은행이 금리 망치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면 실물 경제는 아니더라도 금융시스템이 망가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시의적절하게 상기시켜 준다"라고 말했다.

애틀랜타 소재 GLOBALT 인베스트먼트의 토머스 마틴 선임 포트폴리오매니저는 투자자들은 "먼저 총을 쏘고 나중에 질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두려움에 자산을 먼저 내다 파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전이' 문제라기보다 은행들이 펀딩 압박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가의 문제라면서 "이런 문제를 관리하고 문제를 앞서나가는 은행들의 능력"이 중요하다면서 SVB가 이것에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SVB 창문에 붙여진 FDIC의 25만달러 보증 알림

 

 


smje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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