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알렉타, SVB·시그니처에 과도한 익스포저
美 패스트리퍼블릭 평가손도 8천억 넘어

 

(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운데 스웨덴 최대 연기금인 알렉타에도 핵폭탄이 떨어졌다.

알렉타는 2017년부터 SVB와 시그니처뱅크, 퍼스트리퍼블릭뱅크에 20억달러(약 2조7천억원) 넘게 지분 투자를 했는데 이중 SVB와 시그니처가 파산하면서 손실액이 1조원을 넘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4일 외신에 따르면 알렉타의 전일 오전 경영진은 스톡홀름 본사에 집결해 미국 SVB와 시그니처, 퍼스트리퍼블릭에 어떤 경로로 그간 총 21억달러나 투자하게 됐는지 되짚어보는 자리를 열었다.

알렉타의 대변인은 "SVB와 시그니처뱅크에 투자된 돈은 대부분 손실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패스트리퍼블릭의 경우 미국 금융당국의 통제 아래 놓여 있지 않은 만큼 두 은행과는 경우가 다르다"고 언론에 설명했다.

알렉타는 1917년에 설립된 스웨덴의 직장연금이다. 260만명의 개인과 3만5천개의 기업 회원이 가입돼 있다. 운용자산 규모는 1조1천200억스웨덴크로나(약 137조6천억원)로 스웨덴 최대다. 전 유럽 직장연금 중에서도 다섯번째로 큰 대형 연기금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마찬가지로 알렉타도 스톡홀름증권거래소의 가장 비중이 큰 투자자지만 해외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판단 아래 2017년부터 미국 기업, 특히 중견급 은행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미국 나스닥에 따르면 작년 12월 말 기준 알렉타의 SVB 지분액은 약 2억8천만달러에 달했다. SVB의 주요 주주 중 지분 규모가 네 번째로 크다.

하지만 지분 규모 1~3위는 각각 뱅가드그룹과 블랙록, 스테이트스트리트(SS)로 핵심 사업이 지수추종 펀드인 자산운용사들이다. 이들 운용사는 시장 추종 전략상 자산 기준 업계 16위였던 SVB 주식을 매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로선 알렉타가 가장 비중 있는 투자자였던 셈이다.

알렉타의 '과감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알렉타는 SVB와 마찬가지로 지난 주말 갑작스럽게 파산한 시그니처의 주식도 공격적으로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렉타의 시그니처 지분 가치는 작년 말 기준 약 2억달러. 시그니처 주주 중 여섯번째로 지분 규모가 컸다. 여기서도 뱅가드와 블랙록, SS를 제외하면 알렉타는 주요 주주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투자자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난 일주일 사이에 SVB와 시그니처뱅크가 모두 파산하면서 알렉타는 제대로 손 한번 써보지도 못한 채 거의 5억달러를 날리게 됐다.

SVB와 시그니처뱅크의 파산으로 문제가 다 끝난 것도 아니다. 알렉타는 SVB, 시그니처뱅크와 함께 부실 우려가 커진 패스트리퍼블릭에는 더 큰 자금을 투입한 상태다.

알렉타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한 13F 보고서를 보면 패스트리퍼블릭의 지분 가치는 작년 말 기준 8억6천700만달러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1조1천300억원에 육박하는 거금이다.

문제는 패스트리퍼블릭의 주가가 말 그대로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밤 뉴욕증시에서 패스트리퍼블릭의 주가는 62% 폭락해 31달러 선에서 장을 마쳤다. 이는 알렉타가 작년 12월 13F 보고서를 공시했을 때의 종가 121.89달러 대비 4분의 1토막이 난 가격이다.

그간 알렉타가 패스트리퍼블릭의 주식을 한 주도 팔지 않았다면 지분 가치는 약 6억5천만달러(약 8천500억원)가 증발한 셈이 된다. SVB, 시그니처 손실액과 패스트리퍼블릭의 평가손까지 합하면 알렉타는 불과 일주일도 안 돼 1조5천억원 가까이 날리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처럼 전개되자 스웨덴과 유럽에선 알렉타가 도대체 왜 미국의 중견급 은행들에 그토록 많이 투자했는지 의아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선 알렉타의 방만 투자를 두고 불만과 성토도 쏟아지고 있다.

알렉타의 한스 빌링 최고경영자(CEO)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알렉타는 전체 SVB 투자액 중 절반을 지난해 집행했던 만큼 빌링 CEO는 책임론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부임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은 알렉타의 헨릭 가데 젭센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번 사태로 장기 병가를 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실리콘밸리 은행 본사에 있는 로고

 

 


jhj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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