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물 흔들, 발행도 올스톱…고심 깊어지는 조달 시장
 

(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글로벌 채권 시장이 멈췄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등으로 금리 인상 등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한 데 이어 SVB 공포감이 더해지면서 한국물(Korean Paper) 시장 또한 한층 더 안개 속에 휩싸인 모습이다.

국내 기업의 경우 당장 이번 주부터 외화채 북빌딩(수요예측) 등을 준비했던 곳도 상당해 이들의 고심도 깊어질 전망이다. SVB 사태가 글로벌 기관 투자 심리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시장 전반의 연쇄 효과 등 우려의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발행 중단, 유통거래도 주춤…KP 발행사 발동동

14일 투자금융 업계에 따르면 간밤 미국 등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 달러채 발행을 위한 투자자 모집에 나선 곳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미국 기업들이 2월 CPI 발표 전을 겨냥해 조달 채비에 나섰으나 SVB 사태 등으로 시장이 출렁이자 보류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화채 조달을 준비했던 한국물 발행사 또한 이를 예의주시하며 시장을 살피고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와 현대캐피탈아메리카 등이 이번 주를 타깃으로 각각 호주 달러 이중상환청구권부채권(커버드본드), 달러화 채권 발행을 위한 북빌딩을 준비했다. 약 한 달여 만에 재개되는 한국물 투자자 모집이라는 점에서 시장 분위기를 가늠할 지표로 관심을 모았다.

지난주부터 다수의 발행사가 해외 NDR(Non-Deal Road show)을 진행하고 있는 터라 이후 외화채 조달에는 더 속도가 붙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연이은 악재에 SVB까지 더해지면서 발행사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물 시장은 달러화-원화 스와프 비용 증가 등으로 연초부터 외화채 조달 부담을 맞닥뜨린 데 이어 지난달 CPI 지표 발표 이후 고조된 미국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시장 변동성을 확인해야 했다. 이에 더해 최근 SVB 사태까지 터지면서 외화 조달 시장은 더욱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됐다.

유통시장 또한 거래량 부족 등으로 분위기를 살피기 어려운 실정이다. SVB 사태 이후 아시아 투자등급채권 가산금리(스프레드)가 5~10bp가량 확대되긴 했으나 거래량 자체가 미미해 시장 심리를 온전히 담아냈다고 해석하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만 한국물의 경우 중국 등의 아시아물 대비 스프레드 확대 폭이 더디다는 점에서 비교적 안정성을 인정받는 모습이다.

A 투자금융 업계 관계자는 "각 중앙은행의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과 채권 공급부족, 높은 변동성 등이 맞물려 글로벌 채권시장은 약 2주가량 거래 등이 급감했다"며 "아시아물의 경우 투자할 물량조차 없어 시장이 이례적으로 고요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영향 제한적 vs 투심 냉각 우려…연쇄 파장 긴장감

SVB 사태가 한국물을 포함한 시장에 미칠 영향 등은 제한적일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미국이 SVB 사태가 금융 시스템 전체 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빠른 조치에 나섰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시아물의 경우 전반적인 물량 부족 현상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 1월까지만 해도 KP를 포함한 아시아 채권 공급이 원활했으나 이후 발행 등이 급감하면서 투자처가 제한됐다.

앞선 업계 관계자는 "SVB 사태의 경우 대응 방안 등이 나오면서 시스템적인 붕괴로 이어지는 분위기에서는 비껴간 분위기"라며 "아시아물의 경우 최근 물량이 부족했던 터라 프리미엄 등만 적정하다면 조달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연쇄 파장 등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특히 SVB 파산으로 미국과 유럽 등 각국 은행 주가가 급락하는 것은 물론, 이후에도 중소형 은행이 파산하고 있어 단기적으로 시장 투자 심리가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B 업계 관계자는 "미국 중소형 은행의 파산이 이어지면서 각국 금융기관이 추가적인 디폴트 등을 염두하고 관련 익스포저 파악에 나섰다"며 투자자들의 우려한 터라 이번 사건이 얼마나 확대될 지 등을 확인할 때까진 정상적인 투자 업무 재개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련 업계에서는 다가올 CPI 발표 등을 주시하고 있다. 2월 CPI 지표가 다소 나은 수치를 보인다면 투자 심리 회복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해석이다.

개별 기업의 펀더멘탈 리스크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장기적 관점에서 우려 섞인 시선도 여전하다.

C 업계 관계자는 "한국물 시장 등이 단기적으로 SVB 사태를 버틸 수 있다곤 해도 270조 원 이상의 자산 규모를 가진 은행의 몰락은 단순히 해당 회사만의 이슈는 아닐 것"이라며 "발행 원인은 다르지만 2008년 3월 베어스턴스 파산 이후 9월 리먼 사태가 이어졌다는 점 등을 떠올리게 한다"고 귀띔했다.

ph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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