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유럽의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를 계기로 금융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를 비롯한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발 빠른 유동성 공급 조치가 시스템 리스크의 확산을 막았다고 하지만, 금융시스템의 근간인 은행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또 다른 SVB나 CS 찾기와 맞물려 당분간 금융시장의 높은 변동성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바야흐로 은행들이 금융시장 불안의 장본인으로서 중심에 선 셈이다. 연합인포맥스와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미국 대형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웰스파고의 주가는 지난 1개월 동안 21% 정도 급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 중소형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 주가는 무려 90% 넘게 곤두박질했고 팩웨스트도 50% 정도 하락했다. 그 파장이 유럽으로 전이되면서 유럽은행인 도이체방크, 소시에테제네랄, 바클레이즈 주가도 20% 이상 떨어졌다. 은행권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부도 위험을 반영한 해외 은행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상승세다.





아직은 다행스럽게도 국내 은행들은 직접 영향권에서 벗어난 모양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불안은 국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도 파문을 불러올 게 뻔하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S&P는 SVB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강등했다. 무디스는 퍼스트리퍼블릭을 포함해 중소형은행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검토한다고 발표했고, 미국 전체 은행시스템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낮췄다. SVB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 고금리의 파장, 보유채권 포트폴리오의 평가손실 등으로 유동성 리스크가 커지고 자금조달 위험도 확대될 수 있다고 봤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은행은 물론 전 금융권이 안심할 수 없다. 글로벌 기준금리 인상의 여파로 국내 은행권 연체율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 1월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31%로 전월보다 0.06%포인트 상승했다. 작년 같은 달보다는 0.08%포인트 올랐다. 여전히 낮은 수준이지만, 은행 연체율이 0.3%대에 진입한 것은 2021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각종 대출이 급증한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과 경기둔화 등이 맞물리면 국내 은행의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 대부분이 부동산과 관련된 대출이라는 점에서 문제다. 최근 부동산경기 둔화와 맞물려 은행권의 건전성도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잔액이 작년 9월 말 기준으로 125조원을 넘어서면서 금융 불안의 기폭제가 될 것이란 지적까지 나온다. 업권별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보험 44조1천억원, 은행 34조1천억원, 여신전문금융사 27조1천억원, 저축은행 10조7천억원, 상호금융 4조8천억원, 증권 4조5천억원(3.6%) 등이다.

SVB 사태의 근본 원인은 금리 상승기에 이에 대한 위험관리를 제대로 못 한 탓이다. SVB가 단기성 부채인 예금을 받아 장기성 증권인 채권에 집중하는 등 자산부채관리(ALM)에 안이하게 대응했다. 이에 따라 자산과 부채의 운용 기간 불일치도 상당했다. SVB 사태가 잘못된 자산부채관리와 채권 듀레이션 조절에서 비롯된 상황에서 장단기 채권금리 역전도 부담이다. 금융사는 단기로 자금을 차입해 장기로 대출하거나 투자하는데, 장단기금리의 역전은 금융사들이 누렸던 기간프리미엄이 마이너스(-)라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자금조달과 운용과정에서 역마진 위험이 커졌다.

국내 금융시장이 해외발 리스크에 고스란히 노출된 상황에서 대내적으로도 곳곳이 지뢰밭이다. 해외 은행권에서 시작된 금융 불안에서 국내라고 안심하기는 시기상조라는 의미다. 이럴 때일수록 위기관리 차원에서 금융부실 우려가 제기되는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조기 공급할 금융안정계정 준비에도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두 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파트너로 참여해 금융시장에서 천재들의 모임으로 통했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몰락도 결국은 과도한 레버리지 확대와 시장가격의 평균회귀에 대한 과도한 믿음, 이에 따른 위험 관리의 실패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할 때다. (취재보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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