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실리콘 밸리 은행의 파산 등에 따른 은행업 위기도 빠른 속도로 봉합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발언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불안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지만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지는 않을 것으로 평가되면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은행권 등 제도권 금융기관의 자본 구조가 튼실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가는 정작 글로벌 금융시장 균열의 진앙은 예상치 못한 곳에 있다고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저금리 시절에 전성기를 누렸던 프라이빗에쿼티(Private Equity)가 장본인이다. 월가는 프라이빗에쿼티가 저금리 시절에 지나치게 큰 레버리지를 일으켜 덩치를 단기간에 너무 키웠다고 우려하고 있다.


◇ 프라이빗에쿼티가 위기의 새로운 진앙이 될 수 있는 까닭

프라이빗에쿼티는 증권시장과 같은 '공개(public)' 시장이 아니라 기업 경영진과 '개별적(private)' 협상을 통해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투자하는 자금을 일컫는다. 성장 가능성은 높지만 당장 자금이 없는 기업들에 투자하고, 경영을 정상화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지분을 되팔아 차익을 판다는 특징이 있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펀드와는 달리 한 번 투자하면 보통 3~5년이 지나야 회수된다.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이 도드-프랭크 월 스트리트 개혁 및 소비자 보호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에 발이 묶이면서 프라이빗에쿼티의 무대가 넓어졌다. 해당 법안은 자기자본으로 위험한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한 은행 자산운용 규제책으로 이를 제안했던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의 이름을 따 '볼커 룰'로도 불린다. 볼커 룰의 목적은 금융시스템의 부실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은행시스템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으로 분리하자는 데 있다.

특히 레버리지 바이 아웃(LBO:leveraged buyout) 부문에서 프라이빗에쿼티의 약진이 돋보였다. LBO는 사들이려는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금융회사에서 빌린 자금을 이용해 해당 기업을 인수하는 인수합병(M&A)기법이다.

부동산 개발 단계에서 흔하게 동원되는 브릿지론(bridge loan)도 프라이빗에쿼티의 단골 먹잇감이다. 브릿지론은 신용도가 낮은 시행사 등이 특정 부동산 개발사업장의 개발자금을 비제도권 금융에서 높은 이자를 내고 빌려 쓰다가 사업이 진행되면서 제1금융권의 낮은 이자의 자금을 차입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사업 과정에서 자산가치가 높아지고 사업성이 좋아져 리스크가 줄어들게 되면서다.


◇ 프라이빗에쿼티가 10조달러 주무른다…해당 자산 가치 평가 불투명

해당 분야의 글로벌 투자은행(IB) 공백 등을 바탕으로 프라이빗에쿼티가 움직이는 자금 규모가 10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표적인 기관이 블랙스톤, 아폴로 등이다. 해당 딜의 덩치가 커지면 앙숙 같은 경쟁사들도 쉽게 협업하는 등 팬데믹(대유행) 기간은 프라이빗에쿼티의 전성시대였다.

저금리가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싸게 조달할 수 있는 돈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DC이 있는 연방준비제도 청사
연합뉴스 제공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연준이 은행업 위기 속에도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제약적인 통화정책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어서다. 연준은 지난 22일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목표치를 25bp 인상했다. 위원들의 최종 금리 예상치는 5.1%로 지난해 12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해 1회 더 25bp 인상될 것으로 점쳐졌다. 연준은 이날 연방기금금리(FFR) 목표치를 기존 4.50%~4.75%에서 4.75%~5.00%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는 2007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행보 등으로 위험자산은 위축된 흐름을 본격화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63%,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65%, 나스닥지수는 1.60% 등 주요 지수는 동반 급락했다.


◇ 이제부터 프라이빗에쿼티발(發) 크레디트 크런치도 주목해야

연준의 제약적인 통화정책이 크레디트 크런치(credit crunch)를 촉발하면서 올해부터 프라이빗에쿼티를 본격적으로 압박할 것으로 점쳐졌다. 은행업 위기를 출발점으로 금융시장의 극단적인 자금경색, 또는 신용경색 상태가 이어지면서다.

월가는 우선 저금리 시절에 너무 관대하게 평가된 각종 딜의 밸류에이션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상장이나 재매각을 통해 출구전략을 모색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점도 고금리 시대에 프라이빗에쿼티를 압박할 것으로 점쳐졌다. 프라이빗에쿼티가 상당한 수준의 레버리지로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알려져서다.

시장 변동성 확대로 보유한 자산의 실질 가치가 상당히 불투명한 영역으로 진입했다는 점도 프라이빗에쿼티의 어려움을 가중할 것으로 풀이됐다. 그나마 실물이 있는 부동산이나 인프라스트럭처 관련 딜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두고 투자한 딜의 경우는 가치를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곤두박질치면서 프라이빗에쿼티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해당 딜의 경우 상당히 주관적인 가치평가를 바탕으로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프라이빗에쿼티는 주로 강한 현금 흐름을 가졌지만 기업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영역에 집중해 왔다. 운용 리스크가 작고 전통적 산업의 영역이라 출구 전략을 모색하기도 상대적으로 용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4차 산업혁명 등의 진행으로 프라이빗에쿼티는 지식재산권 등 실물이 뒷받침되지 않는 영역에도 투자 비중을 확대했다. 해당 영역은 경기 변동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실질 가치를 평가하기에 더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모두가 제도권인 은행업 위기에만 시선을 뺏기고 있다. 프라이빗에쿼티가 금융위기의 다음 진앙지가 될 수도 있다는 월가의 목소리에 당국자와 투자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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