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미국 국채 시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춧돌 역할을 한다. 미국채 수익률을 중심으로 거시 경제적 특성을 반영해 각국의 신용스프레드가 시장에서 결정된다. 환율도 각국의 신용 스프레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금리와 환율이 미국채 수익률에 영향을 받으니 증시는 독립적으로 움직일 여지가 제한적이다.


◇ 사상 최고치 경신한 MOVE 지수

글로벌 투자자 대부분이 유독 미국채 수익률 동향에 민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채 가격을 반영하는 수익률은 대체로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기 마련이다.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자산인 데다 미국채를 찾는 투자자들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정이 좀 달라졌다. 미국채 수익률이 널뛰기 장세를 보이며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의 진앙이 되고 있다.

미국채 시장의 변동성은 지표로도 확인되고 있다. 연합인포맥스(화면번호:4370)에 따르면 'ICE BofA MOVE(일명 무브지수:The Merrill lynch Option Volatility Estimate Index)는 지난달 1일 한때 97.33으로 저점을 찍은 뒤 지난 20일에는 182.64로 급등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대혼란을 겪었던 2020년 3월 9일의 역사적 고점인 163.70도 훌쩍 넘어서는 수준이다.

MOVE 지수는 글로벌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미국 국채 옵션 가격을 기초로 국채 가격의 변동성을 산정한 지수를 일컫는다. 이 지수의 상승은 미 국채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치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ICE BofA MOVE 지수
연합인포맥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밀린 숙제를 하듯이 날치기로 기준금리를 우악스럽게 올리고 있어서다. 불과 1년 전 제로금리 수준이던 연방기금(FF)금리는 연 4.75~5.00% 수준까지 올랐다.

연준의 통화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채 2년물 수익률은 해당 조치에 지난 8일 한때 연 5.09%를 찍은 뒤 지난 29일에는 4.08%까지 떨어졌다.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에 따른 충격 등을 감안해도 불과 한 달 사이에 100bp의 변동성이 나타난 셈이다. 벤치마크인 미국채 10년물도 지난 2일 장 중 한때 연 4.08%를 찍은 뒤 3.56% 수준까지 떨어졌다.


◇3배나 늘어난 레버리지에 금리 인상의 함의는

월가는 미국채 수익률의 변동성이 확대된 또 다른 배경 가운데 하나로 21세기 들어 폭증한 글로벌 부채 규모를 지목했다.

글로벌 주요국의 빚은 팬데믹(대유행) 이전 대비 28%포인트나 늘었다. 미국은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일컬어지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수습하느라 동원한 빚잔치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팬데믹 이전까지는 연준이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한 덕분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의 부채만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6년 대비 2배 수준이고 21세의 문턱인 2000년도에 비해서는 3배나 많은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 어떤 파장을 미칠지 지금 글로벌 금융시장이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가장 약한 고리 가운데 하나였던 지역 은행들이 속속 고꾸라진 데 이어 유럽의 금융 명가였던 크레디트스위스(CS)도 하루아침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도 조달 비용 상승을 의미하는 연준의 금리 인상이 미국채에 대해 가지는 함의를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른바 레버리지가 20세기 대비 3배인 상태에서 조달 비용 상승이 재앙적인 후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어서다. 특히 미국 정치권의 부채한도 협상 등이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미국채 시장은 또 한차례 홍역을 치를 수 있다.

부채 문제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도 엄청난 부채를 조달해 겨우 경제를 꾸려가고 있다. 일본은행(BOJ)이 발권력을 동원해 전체 발행 물량의 절반 이상의 일본국채(JGB)를 사들인 덕분에 금융시장이 연명하는 처지다.

중국도 GDP의 3배에 이르는 민간 부문 부채를 지방정부 등이 뒷받침하고 있지만 부실화될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빚에는 장사가 없다. 미국의 지역 은행 위기가 진정됐지만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이유를 무브지수가 웅변하는 듯하다.(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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